
제주해군기지에 기동함대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시민사회 단체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해군 측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해양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세계평화의 섬’ 지정 20주년을 맞은 제주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기동함대사령부의 설치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다.
지난 3일 오전,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강정친구들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제주를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드는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중단하고, 제주해군기지를 즉각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정부와 국회를 향해 기동함대사령부 핵심 기함인 정조대왕함과 SM-3 미사일의 도입이 한반도 방어 및 동북아 평화 구축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1991년 국내외 학자들이 제주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비무장화’를 제시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군사기지와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냉전 시대 군비 증강 논리가 다시 등장하면서 ‘평화’의 개념이 왜곡되고 있으며, 제주가 군사 거점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이 단순한 방어적 조치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제주해군기지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제주가 미중 강대국 간 갈등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한, 제주 제2공항 계획,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 건설 중인 레이더 기지 등을 언급하며, 제주가 점점 더 군사시설 확장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은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제주를 전초기지로 만들고 있으며, 제주 도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제주가 전략도서화되어 군사기지화되는 과정에서 미군의 전술핵 배치와 전략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건설 등과 연결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도중 군 관계자들이 여성 참가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막아 논란이 일었다. 평소 개방되어 있던 화장실이 기자회견 당일 돌연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남성 화장실은 문제없이 이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시민들은 강하게 항의했으며, 15분간의 논쟁 끝에 군 측이 화장실 문을 개방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화장실 이용은 기본적인 인권이며, 특정 행사나 사람들을 가려 출입을 막는 것은 부당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군이 지역 주민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대민 불편을 초래한 것은 제주해군기지가 지역 공동체와의 갈등 속에서 설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희주 제주여민회 사무국장은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도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제주해군기지에 기동함대사령부가 창설됐다”며 제주도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제주가 진정한 세계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비무장, 비핵, 중립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제주의 상징성이 군사적 긴장과 갈등 속에서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즉각 중단하고, 제주해군기지를 폐쇄하는 것이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가 군사적 요충지가 아닌, 평화와 공존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