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역사와 자연을 엮어낸 시적 순간들

김항신 시인의 디카시집 《길을 묻다》가 최근 발간됐다. 이 시집은 김항신 시인이 제주에서 살아온 시간과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으로, 디카시라는 독특한 장르를 통해 제주를 그려낸다. 디카시, 즉 ‘사진과 시’의 결합은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깊이를 창출하는 예술적 형식을 제시한다.
디카시는 ‘순간’을 중시한다. 그 순간은 때로 수십 년, 때로 수천 년을 압축하며 인간과 자연, 우주의 비밀을 한순간에 응축해 보여준다. 김항신 시인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그 이미지 속에 숨겨진 시적 가능성을 담아낸다. 사진 속 이미지와 그의 시적 언어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와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 시집에서 김항신 시인은 제주의 자연에서 펼쳐지는 상징적이고 시적인 순간들은 그의 카메라에 담겨, 그 이미지와 제주 토착민의 독특한 시적 언술이 결합되며 특별한 아우라를 형성한다. 제주의 어머니들의 강인한 삶과 자연의 거친 아름다움은 그의 디카시에서 중요한 테마로 다뤄지며,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다.
김항신 시인의 디카시 속에서는 제주라는 섬의 거친 현무암 위에서 자생하는 생명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지역적인 특성을 넘어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종말이 온다 해도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적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시인은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마치 “세상이 밝아오는 순간, 왓”이라고 다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디카시의 핵심은 이미지와 시적 긴장감의 결합이다. 이미지즘 기법은 불필요한 설명이나 해석을 배제하고, 시각적 대상이나 장면을 간결하게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김항신 시인의 디카시에서는 이 이미지의 돌출과 짧은 시적 문장이 결합되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사진의 독창성과 시적 표현이 상호작용하며, 더 큰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결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때, 디카시는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김항신 시인의 디카시는 현장성과 즉물성에 중점을 둔 작품들로, 그가 살아온 삶의 일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제주라는 장소에서의 삶,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이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시인은 이 디카시를 통해 우리 사회와 인류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김항신 시인은 《길을 묻다》 발간을 통해 그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듯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아주 오래전, 꽃처럼 귀여운 아이들과 카메라를 들고 봄날을 지나던 때가 있었다”고 회상하며, 묵언의 수행을 기다리던 시절과 디카시라는 장르와의 만남을 돌아본다. “디카시 개념이라는 뜻도 모를 때”였지만, 이미 내재되어 있던 감정과 경험을 시를 통해 표현하며 그들과 교감해왔다는 시인의 고백은 이 작품의 깊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제 그는 그 여정을 세상 밖으로 띄워 보낼 시간이라고 말한다.
김항신 시인의 디카시집은 단순히 제주를 담은 사진과 시적 언술이 아니라, 삶과 자연,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시적 언어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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