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4·3연구소는 4·3생활사 총서 제6편, 『다시 항쟁을 기억하며-4・3과 지식인・공직자』(도서출판 각)를 펴냈다. 이번 연구물은 ‘개인사나 가족사’를 넘어 우리가 2000년 4・3특별법 제정 이후 한참을 방기했던 ‘4·3 시기 제주 공동체와 정치·사회집단의 항쟁’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집필에는 김창후, 김경훈, 강경희, 장윤식, 김동윤, 염미경이 참여했으며, 김동화, 이명자, 임충구, 강은영, 조석현, 양계하 씨가 구술에 임해 자신이 기억하는 4・3 인물과 경험담을 풀어냈다.
제주4・3연구소의 증언채록 사업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89년에 4·3연구소가 창립되고, 4・3진상규명운동이 일어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증언채록은 개인이나 가족사뿐만 아니라 통일과 항쟁 의미를 중심에 둔 다양한 주제로 4·3 경험자들을 면담했고, 이러한 활동은 별다른 자료 없이 연구가 부진하던 4·3 연구와 진상규명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던 2000년 4・3특별법이 공포됐다. 증언채록 사업은 암묵적으로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유족 개인과 그 가족들의 기억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전환됐고, 그 후 이 사업은 개인사와 가족사가 주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게 됐다.
그동안 4・3은 많은 변화의 길을 걸어왔다. 보상도 재심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 요즘, 4・3 조사와 연구도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를 위해 <4·3생활사 총서> 6편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다른 서술 방식을 차용했다. 지금까지는 한 개인의 생활사 전반을 시기별로 살펴보는 것이 주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구술자가 자신의 개인생활 경험을 먼저 구술하고, 이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또 하나의 항쟁적 4·3인물’에 대한 기억을 추가로 구술케 하여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구술자가 얹을 또 하나의 인물로는 이번에는 4·3 시기 ‘지식인·공직자(공무원, 교사 등)’로 했다. 이 지식인·공직자는 당시 4·3활동가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인물로, 구술자들은 모두 이런 이들의 유족이다. 모두 여섯 분의 구술자가 여섯 분의 숨은 4·3인물을 소개한다.
“아버지는 통일론자 입장에서 생명 걸고 투쟁한 것이지. 그래서 나는 비굴하진 말자고 수시로 굳게 다짐하곤 했지. 아버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든가 원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우리 작은할아버지(이덕구)하고 우리 샛할아버지(이좌구)는 아직도 나라에서 인정이 안 되니까 제일 큰 소망은 그거죠. 인정받고 싶은 심정, 내가 죽기 전에 인정받고 싶은 심정, 그게 제일 큰 소망이죠.”
“어릴 때는 너무 힘드니까, 아버지 원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4・3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진상보고서 보니까, 아버지는 당시 시류에 따라 모두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다 희생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제 원망하지 않습니다. ⋯ 원망해서 무얼 합니까.”
제주4·3연구소(소장 김창후)는 “어떤 구술자는 구술자 자신의 이야기보다 지식인·공직 활동가의 구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다른 구술자는 활동가보다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에 활력이 넘쳐났다. 구술내용 간의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방식으로 생활사 서술이 이루어졌다”며 “구술생활사 연구 방법으로는 다소 주제가 일관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어쩌면 한참 늦어진 ‘4·3활동가’들에 대한 구술 자료를 조금이라도 더 빠른 시기에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아무쪼록 이러한 방법이 4·3생활사 연구의 확장은 물론, 4·3항쟁사 연구와 ‘4·3정명’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