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심상시인회(회장 문상금)가 최근 첫 번째 동인지인 《제주심상, 바람이 인다》를 출간했다. 제주심상시인회는 2023년 6월 창립 이후 매 분기마다 활발히 활동을 이어왔다.
회원 간의 시적 교류와 시집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며, 이번 창간호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모여 만든 첫 동인집으로, 그들의 독특한 시적 세계와 제주만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창간호에는 심상(心象)지의 발행인인 박동규 교수의 "제주 '심상동인'의 발족을 축하하면서" 축하글과 양전형 제주문인협회 회장의 "시와함께 무궁한 역사로 빛나길" 축하글이 함께 실렸다.
이번 동인집은 제주 지역의 풍경과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그리고 시인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
제주의 자연 요소인 바람, 꽃, 바다 등이 시적 형상으로 표현되었으며, 제주만의 신비로운 특성과 고유의 매력이 강조된 작품들이 다수 실렸다.
시인들은 제주의 섬세한 감정선과 울림을 담아내고자 했으며, 그들의 시를 통해 제주라는 지역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색하고 있다.
특히, 한기팔 시인의 문학적 영향은 제주심상 시인회의 창립과 이번 창간호 발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기팔 시인은 제주 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제주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제주 자연과 정서를 잘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제주심상 시인회는 한기팔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3년 10월 3일 서귀포칠십리시공원에서 제1회 아윤 한기팔 시인 추모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제주심상 시인회는 이번 창간호를 통해 박목월 시인이 창간한 시 전문지 《심상》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한다.
박목월 시인은 《심상》을 통해 제주와의 교감을 시로 풀어낸 바 있으며 그의 문학적 유산은 제주심상 시인회의 활동과 작품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주심상시인회는 앞으로 제주 문학의 발전과 활기를 더할 계획이다. 이번 창간호는 그 첫 번째 결실로, 시인들은 제주만의 자연과 감정을 바탕으로 한 시적 가능성을 실험하며, 그 작품들이 한국 문학의 중심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창간호 발간을 기념하며,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에게도 문학적 영감을 주고, 그들의 작품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창간호의 출간은 제주심상시인회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제주문학의 미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제주심상 시인회는 앞으로도 제주 지역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회원명단]
김병택, 김성진, 김수환, 문상금, 양대영, 양문정, 최원칠
한그루 刊, 비매품
[작품감상]
간곡한 전언
김병택
저 험한 산을 반드시 오를 각오로
힘차게 출발하는 일이라고 한다
눈앞에 수시로 웃으며 찾아오는
달디단 휴식의 유혹을 물리치고
가벼운 돌멩이도 무겁게 밟으며
항상 조심하는 일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린 뒤의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햇살을
찾아내는 뜻깊은 일이라고 한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의 장막을
애써 지우는 일이라고 한다
머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몽상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한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어도
게으름의 끊임없는 공격으로부터
‘나’를 막아내는 일이라고 한다
매일 쌓여가는 공론의 관념을
철저히 부수는 일이라고 한다
결국 마지막엔 ‘나’조차 몰라볼
다른 ‘나’를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파도를 넘어서는 것은
밭담
김성진
손자 위에
할아버지
그 위에 아버지
아버지 위에
아들.
아버지 고통이었다.
할아버지 신음 소리
어린 손자 흐느낌이 그랬다.
천년 千年을 얹고
또 얹은 세월.
꾸부러진 허리
펴지 못한다.
꿈길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돌담과 돌담 사이
이쪽과 저쪽의 사이
내가 서 있다.
하늘 가는
길이 보인다.
꽃병
김수환
다 남을 수 없어
배롱나무 꽃그늘
온전히 담을 수 없어
몽글몽글 산들바람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뭉개다 눙친 하루
사이다병 꽃병으로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었다는
능소화 송이송이
기다림으로 꺾이다가
타박타박 어머니 늦은 밤길
도란도란 길동무
보름달 꽃병에
펼쳐드리는 별빛 고명
자목련紫木蓮
문상금
봄이
너무 길다
흰 새떼가 되어
날아오르고 싶었는데
미처 백목련白木蓮이 되지 못한
꽃잎들은
봄 햇볕 아래
뒤집기를 수만 차례
스스로 붉게 물들였다
형벌刑罰처럼
온몸이
피투성이
될 때까지
말똥구리
양대영
제 이름 몸에 욱여넣은
말똥구리 한 마리
지나온 길을 디딤돌 삼아
벅찬 숨소리 하나 없이
지구를 돌린다
말똥구리의 몸에 기댄
지구가 기우뚱 몸을 기운다
지구 안에서 그리움에 퍼렇게 멍든
물빛 일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눈물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몸 기우는 지평선 위로
낮별 몇 떴다가 말없이 진다
벚나무 아래
양문정
눈부신 꽃잎이 선사하는
화안한 침묵
그늘 아래 걷는 사람들
그 순간을 영원처럼 멈추어 선 듯
시간이 떨구어 내면서
날아 내리는
한갓 꿈으로 마감하는
몹쓸 꿈들의 봄날
봄날의 상처는
아물었으리라
아물린 자리
박차고 올라온 새 잎이
붉게 물들다 지쳐
떨어져 내린다.
봄날이,
솟아오르는 녹음으로
아름다이 타오르던 시절 있었던가
내게 그런 날이었어도
미처 몰랐던 것인가.
윤슬
최원칠
당신과 내가 물과 빛으로 만나
어느 깊은 계곡 인적 드문 호수에 살았다면
당신은 순한 가슴으로 부서지는 금빛 조각늘
한없이 받아 주셨을 테죠
별이 쏟아지고
밝은 밤하늘 타고 내리는 은은한 달빛
이 세상 가장 설레는 가슴으로
조용히 흔들리며 스며들게 하셨을 테죠
비 내리는 박명의 오후에는
빗줄기 속에 흐르는 소나타를 들으셨을까요
검은 호수에 하염없이 눈발이 내려앉는 날에도
말없이 받아 다독여 주셨을 테지요
당신과 내가 만나
바람 불고 햇살 섞이는 날
일렁이고 뒤척이며 스며들고 물들어
아름다운 무아레 사랑으로 빛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