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간히 비가 내리는 11일 오후 일명 ‘동과양 물통’을 찾았다. 지금도 이 지역을 ‘물통동네’라고 부른다. 사실 물통을 찾게 된 동기는 문학지 교정차 인쇄소를 들렸다가 지인과 함께 ‘우여까페’에 차를 마시러 들린 것.
찻집 바로 뒤편에 ‘우녀천’이 있다. ‘우여카페’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또한 본인이 기르는 강아지 이름(여우)을 거꾸로 부른 이름이다.
‘우녀천(우여)까페’ 사장님은 자기의 고향 본집에서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인테리어 했다고 한다.

우녀천은 ‘워새미’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옛풍경을 찾아 볼 수 없고, 상수도 보급 전에는 이 지역의 식수였으며, 보급 후에는 빨래터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워세미에는 자연석 암벽에 새겨진 비문이 있는데, 이 물을 정비하기 위해 헌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 비문으로 ‘우녀천(牛女泉)’이라 암각되어 있다고 한다. 우녀천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봐서 옛날 사람들이 이 물은 암물로 귀하게 여겼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아마도 풍수지리와 물맛(수질)에 연관하여 명명한 것이라 여겨진다.

인내판을 보니 “이곳은 옛날부터 아들을 낳고 싶을 때 우물터의 부처(또는 미륵)님께 기원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곳에 미륵석상을 모신 ‘미럭당’이 있었다. ‘미럭보살물할망’을 모시는 본향당이었다. ‘외새미(牛女泉)’를 지켜 주는 물할망(水神)이며 아기를 점지해 주는 할망(産神)이다.
또한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타고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맑고 시원한 물이 풍부하게 넘쳐흘렀다. 주변은 기암괴석과 동백나무숲이 있어 서기(瑞氣)가 서리고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라고 적혀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