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에는 유로화 추이와 유로존 뉴스 등을 뚫어지게 보면서 단말기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유럽이 키를 쥐고 있습니다. 6월 중반까지 그리스 영향권 하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A은행 외환딜러)
원화값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1달러당 원화 환율 120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외환시장과 기업을 연결하는 최전선에 있는 외환딜러들은 최근 원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유로화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얼마나 떨어지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관건은 그리스 동향.
특히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그렉시트·Grexit)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유로존 체제 전반을 '위기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원화가치는 5월 들어 3주간 57원이나 하락했다. 특히 지난 24일과 25일 이틀 연속 1180원을 웃돌면서 지난해 10월4일 1193원을 기록한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면서 신흥국 통화로 분류되는 원화도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실제 최근 18영업일간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3조9812억원을 순매도했다.
하지만 원화는 유로화 약세에 비하면 강도가 덜하다. 유로화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0.1% 하락한 1.2517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2개월래 최저치로 달러화에 대해 한 주간 2.1%, 한 달 동안 5.5% 하락했다.
A시중은행 외환딜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원·달러 환율이 1185원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이 되면 환율 상승세도 멈출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쉽게 뚫렸다"며 "유로화는 1.25달러가 지지선인데 더 빠진다면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18일 동안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선) 달러화에 대한 결제 수요와 송금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코스피지수가 안정되고 외국인 순매도가 잦아든다면 환율시장이 잠잠해질 수 있지만 다음 달 중순까지는 불안감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지영 우리선물 연구원 역시 "(환율이 급등하면) 통상적으로 기술적인 조정 또는 (달러) 추가 매수에 대한 부담 등이 혼재돼 방향성을 타진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최근엔) 달러 결제 수요가 계속 유입되면서 시장의 예상보다 환율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 연구원은 "원화값만 하락하는 게 아니라 유로화는 물론 다른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어 당국의 구두 개입 레벨도 약화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비는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그리스 2차 총선이다. 현재 그리스 여론은 긴축 반대보다는 유로존 잔류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긴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신민주당과 사회당에 맞서 긴축에 반대하고, 구제금융 조건의 재협상을 내세운 급진 좌파연합 가운데 누가 승리할 지 예단할 수 없다. 시리자 등 반긴축 연정이 집권하면 그렉시트라는 위험이 불거질 수 있다.
B은행 외환딜러는 "유럽 재정위기로 대변되는 투자 환경이 악화되면서 위험 자산들이 약세를 보이고, 원화를 비롯해 아시아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다음 달 그리스 총선 결과에 따라 지속적으로 잡음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대선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유럽 불확실성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환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달 중순까지는 1100원대 후반에서 당분간 움직일 가능성이 있고, 12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외환딜러들은 국내 경제 여건이 과거와 달리 견고하다는 점에 안심하고 있다. 외환 보유액이 충분하고 외화 유출에 대비한 일본·중국과 통화 스와프 규모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C은행 외환은행 딜러는 "과거 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국내 펀더멘털이 굉장히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될 만한 점이 없다"며 "최근 외화자금 상황이 굉장히 좋아 풀 수 있는 외화가 많기 때문에 내부 사정은 안심하고 있지만 해외쪽 사정이 반영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내 증시에 투자했던 유럽계 투자가들이 원화를 외화로 바꿔서 나가면서 수요 요인으로 등장했다"며 "유로존이 결속할 수 있다는 시그널만 나오면 올라가는 속도 못지않게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환율 상승이 수출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지만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원은 "유로존 문제로 수출 둔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빛이 바랬다"며 "물가에 미치는 영향 역시 수출 둔화와 유로존 불확실성, 중국 경기 둔화 우려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어 복합적"이라고 밝혔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