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감독은 26일(현지시간) 밤 프리미어 스크리닝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부터 칸 영화제 프레스 컨퍼런스 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 감독은 "'돈의 맛'은 단순히 한국 사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인들의 사회, 유러피안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운을 뗐다.
"백인의 사회, 식민지 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영토의 문제다. 경제적인 식민지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영화 속 로버트의 캐릭터를 칸의 백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로버트'(달시 파켓)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인 로비스트다. 한국 최고의 재벌 백씨 가문과 손잡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의 상징으로 간주되며, 이번 칸 영화제에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에 반발하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나니 모레티(59)를 비롯한 유럽 좌파 성향의 영화인들에게 각광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임 감독의 도발적인 발언은 이어졌다. "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우아하게 폭력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 삶의 바탕에는 고통 받는 아시아, 아프리카 이주민이 있다. 그들의 고통을 오랫동안 외면한 결과가 테러리즘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그리고 마침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감독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앞으로 나는 백인들을 공격하는 영화를 찍겠다. 한국은 너무 좁다"는 말까지 나왔다. 순간 기자회견장에는 웃음과 경탄이 엇갈리며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어느 외국기자가 "만일 그런다면 당신은 또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임 감독은 "우아하게 사는 백인들은 보다 포용력이 있길 바란다"고 농반진반했다.
이날 임 감독의 발언을 두고 국내 취재진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우려하는 측은 "영화 감독으로서 세상 어떤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자로서, 감시자로서의 시각을 드러낸 것은 좋았지만 테러까지 건드린 것은 역효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임 감독에 관해 조금만 깊이 안다면 이 모두가 계산된 발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임 감독은 앞서 24일 칸에서 일부 한국 기자들과 만나 극중 필리핀인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가 '윤 회장'(백윤식)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비극적 죽음을 당하는 것과 비서 '주영작'(김강우)이 에바의 시신을 필리핀의 가족 품에 전해주는 것 등의 설정이 칸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자신했다.
"한국은 이주민이 있긴 하지만 아직 수가 적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주민과 매일 보면서 사는 역사가 깊은 나라다.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고상하게 살지만 이주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지, 어떤 끔찍한 경로를 통해서 자신들의 땅에 오게 됐는지 잘 안다. 피부에 와 닿는다. 특히 고난을 겪는 이주민 중에서 테러리스트가 출현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우리 영화를 통해 깊은 죄의식과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임 감독은 작심하고 프랑스인을 비롯한 백인들의 심리를 자극한 셈이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 수상작은 27일 폐막식에서 발표된다.【칸(프랑스)=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