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순 시인의 최근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를 발간했다. 이번 시집은 5부에 걸쳐 모두 75편의 시조를 담고 있다.
이 시집을 읽다보면 제주-자연의 풍경이 아득히 그려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채색 소묘처럼 정겹고 아름다운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 안에 꽃 속의 벌처럼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사랑의 기록이자, 포옹의 기록이고, 상처의 기록이다. 김영순의 시에서 사람은 풍경의 전압을 올리고, 풍경은 사람의 전압을 올린다.
그러므로 김영순의 시들은 사람과 풍경이 만나 일으키는 스파크이다. 그 스파크에 감전되면 누구라도 울게 된다.
김영순 시인은 풍경을 사람의 내부로 글어 들이는 작품을 쓰고 있다. 여기에 더래진 내재율과 대구법은 사람이 풍경이 된 움직임을 더욱 생생하고도 경쾌하게 살려낸다.
더욱이 김영순 시인의 소환해 내는 사물이나 풍경은 대부분 제주도의 것들이다. 제주라는 중립적 장소를 전유하여 시인만의 공간을 생산하면서 자주 동원하는 것이 아버지/어머니의 서사이다.
시인에게 아버지/어머니는 공간적 실천의 가장 중요한 에이전트이다. 시인은 풍경을 멀리 놔주지 않는다. 그녀는 풍경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껴안고 그것에 숨을 불어넣는다.
시인은 2013년 <영주일보> 신춘문예로 같은 해 <시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과 장물아비>, <그런 봄이 뭐라고>가 있다.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감상]
포옹
말은 제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세렝게티 초원에서나 한라산 기슭에서나
서로의 뒤를 봐주느라 그 일생이 다 간다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서귀포 몽마르트르 솔동산길 오르다가
그저 비나 피할까 잠시 들른 이중섭 거처
일본서 당신의 부고가 손님처럼 와 있네요
수백여 통 남편의 편지,
그 편지 한 장 없어도
붓과 팔레트마저 미술관에 기증하고도
서귀포 피난살이가 그중 행복했다니요
돌아누우면 아이들 돌아누우면 당신
게들은 잠지를 잡고 아이들은 게를 잡고
오늘은 별 따러 가요
하늘 사다리 타고 가요
잔소리국밥
요즘 따라 아버지가 눈에 자주 밟힌다며
서먹하던 언니가 간만에 연락 왔다
기어이 동박새 우는 산소에 다녀왔다
모처럼 이른 저녁 순대국밥 먹다가
어느 순간 둘이서 눈이 딱 마주쳤다
얼결에 누가 먼전지 숟가락을 내려놨다
‘밥 망 먹지 마라, 그렇게 살아진다’
손등을 내려치던 아버지의 숟가락
오늘은 참 듣고 싶다
밥상머리 잔소리
그 말
‘착하다’
물 건너 일자리 찾아 나섰을 때도
‘착하다’
그 자리 박차고 내려왔을 때도
착하다, 착하다는 말
착하디착한 엄마 말씀
그렇게 그 말을 들은,
세상은 착해졌을까
오늘은 시집가는 딸에게
그 말 툭, 해버렸다
아니다
너는 나처럼 착해지지 말거라
고삐
세상에 함부로 놓아선 안 되는 게 있다
아버지는 그것을 가족에 대한 예의라셨다
서늘한 고삐의 행간
일기장에 고여 있다
말이 보는 세상이 네가 보는 세상이다
너무 꽉 잡지도 말고 느슨하게도 말고
언제든 잡아챌 수 있게
손안에 쥐고 있어라
사람이 만만해 뵈면 제 등에 태우지 않는다
몇 걸음 걷다가 내동댕이치더라도
고삐는 절대 놓지 마라
방향타가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