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철 시인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발간
오승철 시인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발간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3.03.2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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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철 시조집
▲ 오승철 시조집 ⓒ채널제주

최근 오승철 시인이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를 펴냈다.

이 시조집은 1부 서귀포를 찾아서, 2부 물질 끝낸 바다에 경례 , 3부 펏들펏들 떠도는 눈, 4부 입술에 묻은 ‘쌍시옷’, 5부 게미용 점방 불빛 등 모두 59편의 시조를 담고 있다.

‘긁다 만 부스럼같이’란 시조를 보면 ‘에라/ 그만두자’와 같은 초장으로도 현대시조 텍스트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오승철 시인은 21세기 시조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초장의 후반부에서는 한결 더 그러하다. ‘긁다만 부스럼같이’ 구절에서 보듯 부스럼 긁는 행위라는 비유를 통해서 해 오던 일을 중단하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에라 그만 두자’는 이미 저자 바닥에서나 발견 할 수 있을 법한 일상인의 발화에 해당할 터이고 ‘긁다만 부스럼’이란 표현 또한 지극히 비루한 현실의 한 장면에서 포착할 만한 표현이다.

독자들은 아직도 오승철 시인의 사무치던 구절들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솔체꽃 하나만 져도 먹먹한 세상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는 자맥질로 오가는 것’ ‘이里 사무소 스피커가 혼 부르듯 하는 날’ ‘천지간 외로운 사랑’ 등 그토록 강한 감동의 파도를 몰고 오던, 폭풍 같은 위력의 서정성을 이제는 억누른 채 오승철 시인은 이제 아직 탐사해보지 않은 미묘한 경계 지대를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에게 삶의 허기를 일깨우곤 하던 봄 꿩, 그리고 제주 섬의 슬픔을 가을마다 상기시키던 고추잠자리는 오승철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어온 주요한 구성원들이었다.

‘꿩과 고추잠자리를 그만 울리라는 농담에 대하여’란 시조에서는 시적 화자에게 궝과 잠자리는 오래된 벗과도 같다.

이 택스트에서 시적 화자는 꿩과 잠자리가 불러오던 정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들과 함께 설정되곤 하던 주체의 좌표상 위치에는 변화가 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오조리 포구’란 시조에서 시인은 그 오조리 마을의 저녁을 ‘달랑게 같은 저녁’으로 묘사한다.

저녁이라는 시간대의 서정성이 달랑게라는 비서정적 대상이 제시되는 순간 그만 색깔이 바래고 만다. 그리하여 셋째수 종장에 등장하는 ‘고백’의 형용의 참으로 자연스러워 진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에서는 어머니의 숨비소리를 기억함으로써 제주 해녀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강영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창조적으로 형상화 된 그의 미학이 정점에 다다른 듯 여겨진다’며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인연을 호명하며 갈무리하는 이번 시집은 한마디로 칠십리 그 위에 뜬 등불이다’고 밝혔다.

오승철 시인은 서귀포 위미에서 태어나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겨울귤밭」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시조집으로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터무니 있다』 『누구라 종일 홀리나』 『개닦이』 등 5권을 펴냈고, 단시조 선집으로 『길 하나 돌려세우고』,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사고 싶은 노을』 8인8색 시조집 『80년대 시인들』 등을 냈다.

중앙시조대상, 오늘의시조작품상, 한국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지냈다.

황금알/ 값 15,000원
 

고추잠자리. 22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날아보니 알겠더냐

- 그래, 그래 알겠더냐
매운맛을 알겠더냐

한 생애
그리움으로
붉어보니 알겠더냐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하고 싶다
 

그리운 관명
 

건들지 말아야 할 건 건들지 말아야지
멀쩡한 세상 한켠 뭘 자꾸 훔쳐보나
기어이 동티난 게지 멱살 잡고 가는 눈발

이 섬의 구석구석은 신의 영역이지만
귀신들도 딱 한번 줄행랑칠 때있다
“어사또 출두야” 같은 관명이란 말 앞에선

새마을 기 펄럭펄럭 재래식 변소개량
누가 내 가슴에도 관명이라 붙여다오
하룻밤 하룻밤이라도 너 없이 살고 싶다.
 

칠십리
 

세상에 등 내밀면 안마라도 해주나
해마다 점점 낯선 서귀포 솔동산길
찻집에 몰래 온 섬도 뿔소라로 우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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