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진오 작가 《섬이 된 할망》 발간
[신간] 한진오 작가 《섬이 된 할망》 발간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3.02.2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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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루트, 신의 길을 찾아 나선 물음표의 순례
한진오 작가 '섬이 된 할망' 표지
▲ 한진오 작가 '섬이 된 할망' 표지 ⓒ채널제주

제주섬을 만든 여신 설문대할망의 귀환을 기다리며

최근 한진오 작가의 신작 신화에세이 <섬이 된 할망>을 펴냈다.

제주섬의 창조주 설문대할망의 흔적을 찾아 나선 이번 신화에세이는 저자 자신이 하나의 ‘물음표’가 되어 설문대가 이 섬에 남긴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 의미를 되짚고 있다.

그리하여 열여덟 꼭지에 이르는 여정은 ‘설문대루트’를 짚어가는 물음표의 순례기라 할 수 있다.

화자인 물음표는 옛날이야기의 백과사전인 할머니로부터 “치마폭에 흙을 쓸어 담아 제주를 만들었다는” 거대한 여신 설문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로부터 마음에 품은 갖가지 질문들은 청년을 지나 장년에 이르기까지 물음표를 섬의 곳곳에 남겨진 설문대의 내력에 이끌리게 한다.

등경돌, 두럭산, 덩개빌레, 솥덕바위, 엉장메코지, 홍릿물, 외솥바리, 삼솥바리, 족감석, 범섬, 용연, 물장오리…. 할망의 자취를 더듬으며 순력한 제주섬은 더 이상 그 옛날, 할망이 만들었던 섬이 아니다. 파헤쳐지고 사라진 창조의 흔적처럼 물음표가 목도하는 것은 ‘제주다움’이 사라져가는 섬의 오늘이다.

결국 저자가 기다리는 설문대할망의 귀환은 제주다움을 찾은 제주섬이라 하겠다. 지난한 순례 속에 담긴 간절한 염원이 한 편의 ‘아름다운 굿’처럼 펼쳐진다.

한진오 작가는제주신화의 자장 속에서 ‘제주다움’을 추구하며 전방위적인 예술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제주도의 굿과 신화를 바탕으로 희곡을 쓰거나 탈장르 예술창작을 벌이는 제주토박이다.

주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전방위적 예술창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애오라지 ‘제주다움’이다. 지은 책으로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 인문지리서 《제주 동쪽》, 제주신화 에세이 《모든 것의 처음, 신화》 등이 있다.

한그루 刊 15,00원

■ 책 속으로

설문대할망은 어떻게 섬을 만들고 산을 쌓아 올렸을까? 얼마나 클까? 어떻게 생겼을까? 고스란히 되살아난 어린 시절의 질문들은 내 이름조차 물음표로 바꿔놓았다. 근원을 향한 의문이 샘솟자 그동안 내 머릿속에 주워 담아온 설문대의 모든 사연을 차례로 복기했다.

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물음표가 된 나는 제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천지창조의 옛이야기들을 갈무리하며 마치 한 편의 창세기 같은 서사시를 엮어내기 시작했다. (15쪽)

어느덧 물음표는 섭지코지를 장악한 리조트 코앞까지 다다랐다. 그는 환락의 휴양지를 애써 외면하며 고래도 물개도 사라진 새끼청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래와 물개의 깊은 잠을 떠올렸다. 원래 뭍짐승인 포유류였던 고래와 물개는 바다살이를 하는 쪽으로 진화했지만 여전히 허파로 숨을 쉰댔다. 수중에서 잠이 들어도 좌뇌와 우뇌 중 하나는 늘 깨어있다고. 호흡이 달릴 때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들이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든 채로 목숨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물음표는 고래와 물개의 반쪽 잠을 달리 풀이했다. 먼 옛날 창조주의 섬에서 태어나 바다로 떠나갔지만 두고 온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늘 깨어있는 것이라고. 고래와 물개는 만생명이 함께 공생하라는 여신의 뜻을 여전히 간직한 채 섬을 향해 숨비소리를 내고 있는데 인간만은 눈을 떠도 잠든 영혼인 불쌍한 존재라고.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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