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지난 총선 직전 서울 관악을에서 벌어졌던 여론조사 조작 파문과 이에 따른 이 공동대표의 후보직 사퇴 등 일련의 사건들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일 통합진보당이 공개한 '비례대표 선출 선거 관련 온라인·오프라인 투표 전반의 유형별 문제점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 문건에 따르면 사무행정과 온라인투표, 현장투표 등 모든 부문에서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이정희 공동대표는 4일 오후 열린 당 전국운영위원회에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투표가 정당성과 신뢰성을 완전히 잃었다는 부풀리기식 결론은 모든 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부정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공동대표는 "편파적이고 부실한 진상조사"라고 주장하면서도 "다음달 3일 실시될 당직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저를 중심으로 짜일 차기 당권구도는 이제 없다"며 자신의 불출마로 사태 확산을 막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같은 흐름은 총선 직전 벌어졌던 서울 관악을 여론조사 조작 파문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관악을 야권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이 시작된 지난 3월17일 이 공동대표 선거대책본부 소속 조모 보좌관이 당원들에게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함' 등 내용이 포함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직후 이 공동대표는 "이번 사태로 여론조사 결과에 변동이 있었다고 확언할 순 없지만 김희철 의원이 변동이 있었다고 판단한다면 재경선을 하겠다"며 사실상 부정행위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놔 경선 상대인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를 자극했다.
이 공동대표가 국회의원 후보등록 마감시한을 4시간 남기고 후보직에서 사퇴하긴 했지만 당시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정희 대표가 사죄하고 사퇴하지 못하게 하는 배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당시 통합진보당 안팎에서는 여론조작 파문 때 이 공동대표를 막판까지 버티게 했던 것이 옛 민주노동당 세력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라는 제보가 속출했고, 이번 비례대표 경선 부정행위 진상조사에 대한 이 공동대표의 반발 역시 당권파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내 당권파는 과거 대학 운동권의 주사파·자주파(NL)로 불렸다가 옛 민주노동당의 주축이 된 세력으로서 비당권파인 국민참여당 출신과 진보신당 탈당파(PD)를 압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당권파를 이번 비례대표 경선 부정행위의 주체로 지목하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진보당 부정선거의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의 주체사상 신봉에 있다"며 "즉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그 어떤 것도 정당하며, 특히 투표(선거)는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 원장은 "주사파로 구성되어 있는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를 이루는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이번에 드러난 선거부정을 '부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며 "주사파의 핵심인물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방법(그것이 총체적 선거부정일지라도)을 동원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정권의 통치방법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당 안팎의 비난이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이정희 공동대표와 나머지 공동대표 간 이견까지 증폭되며 위기감이 확산됐다.
전국운영위원회에 참석한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 공동대표에 이어 발언대에 서서 "만약 오늘 회의에서 당의 앞날을 밝히고 쇄신해 나가고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지 못한다면 당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것이라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심상정 공동대표 역시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드린 상황에서 당 수습까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지도부 총사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정희 공동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조준호 공동대표도 "어떤 입장과 정파의 이해를 대변해서 공정성을 잃은 가운데 조사에 임했다면 질책과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내용이 온전하지 않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항변하며 편파·부실조사라는 이 공동대표의 발언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대표단 간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 공동대표는 결국 당권파의 입장을 대변하며 진상조사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공동대표는 5일 오전 7시께 "진상조사보고서에 전반적인 부실이 있었다"며 "직접 거론된 분들 뿐만 아니라 부실한 조사로 과도하게 부정행위자로 내몰린 분들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희의 공통된 의견이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선언, 전국운영위 자리를 떠났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