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항상 정권말기에 대통령 측근 비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역대 정권에서 조용하게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단 한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최측근, 즉 최고 실력자들이 항상 부정부패와 권력 오남용의 정점에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MB정권 핵심 3인방 검찰수사· 비리의혹 대상…'권력무상'
MB정부도 이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모양새다.
최근 현 정부의 실세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 사건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고 있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이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돈의 출처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한때 MB 정부의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도 이번 사건과 관련, 검찰로부터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최 전 위원장은 검찰에서 "시행사 대표로부터 받은 돈은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 측근이자 '정치적 멘토'로 불리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과는 고향(경북 포항)이 같고,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50년 지기 사이다.
비록 번복하기는 했지만 당초 '대선 여론조사 비용'이라는 최 위원장의 발언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최시중 개인 차원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최 위원장이 받은 돈의 성격과 사용처가 '대선자금'에 쓰였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 앉지 않을 분위기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최 전 위원장의 금품 수수의혹과 함께 불법 대선자금 전체를 수사하라며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다 새누리당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까지 거론하며 "박 전 차관의 비리도 성역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며 현 정부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려는 자세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으로부터 퇴출 저지 명목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상득 의원 역시 최 전 위원장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주도한 최고 권력 실세로 꼽힌다.
이 의원은 여비서 B모씨의 차명계좌에서 의문의 7억원이 발견됐지만 "장롱 속에 보관해오던 개인자금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의원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없다.
MB정부가 탄생하는데서부터 집권기간 내내 핵심적 역할을 해온 이들 3인방이 정권말기들어 각종 비리의혹과 관련돼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거나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고 있는 현실은 권력무상을 느끼게 하고 있다.
'도덕 정권'임을 강조해온 MB정권도 역대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역대 정권도 말기 비리로 얼룩…측근 권력 오남용 차단 대책 시급
군부시절을 제외하고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족 및 측근 비리로 얼굴을 제대로 든 대통령이 없었다. 국민들은 '뽑아준 실수'를 또 다시 반복하며 탄식할 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 씨가 비선(秘線) 조직을 운영해오다 '한보사태'와 연결돼 구속됐다. 이로 인해 김영삼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모두 잃고, 리더십 부재라는 오명속에 IMF사태라는 결정타를 맞게 됐다.
김대중 정권은 임기 말에 '진승현·최규선 게이트'에 무너졌다. 또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권노갑 의원이 구속됐고, 홍걸·홍업 두 아들 역시 비리로 구속돼 영어(囹圄)의 신세가 돼야 했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도 측근 비리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 측근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비리사건에 휘말려 구속됐고, 친형인 노건평 씨도 각종 비리에 휘말려 구속됐다. 그리고 아들 노건호씨와 노 전 대통령 본인까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믿었던 동지와 동료들이 저지른 부패의 덫에 걸려 2010년 5월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이처럼 측근·실세 비리와 의혹은 단순히 개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좁게는 당사자들이 수사대상으로 떠올라 책임을 지면 그만이지만 비판과 오명은 모두 대통령이 떠 안게 된다. 결국 그 정권을 평가하는 결정적 잣대가 되는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 정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측근들의 권력 오남용 등에 대한 철저한 차단, 방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권력자들이 '권력은 유한하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