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 작가가 입체와 설치를 포함한 현대미술을 돌담갤러리(제주 중앙로 58 하나은행 제주금융센터 지하 1층)에서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 후원으로 개인전을 연다.
이지현 작가는 작업에 대한 기본 개념을 ‘현대미술은 끊임없는 새로움에 목말라한다. 나는 세상에 변하지 않은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 익숙함이 또 다른 편안함으로 내게도 다가온다. 하지만 문득 변하지 않은 뭔가에 대한 지루함과 불편한 심기가 있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면 어떨까, 사진을 볼 수 없게, 옷을 입을 수 없게 하면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까 하는 생각들이다. 과거로부터 변하지 않은 뭔가 에 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그것에 대한 변화를 고민해 왔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속박으로부터 진정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해체는 이 같은 고민을 풀어주는 내 작업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다. 해체는 세상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부터 비켜나게 해서 그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게끔 만들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어떤 것을 끄집어내는 게 내 작업의 핵심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작품을 작업하게 된 의도와 바람을 보여줬다.
‘우리 시대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혼재되어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초창기 도덕, 교련 같은 교과서로 작업을 한 것도, 내가 사는 도시의 지도를 뜯은 것도, 그런 이유에 대한 물음을 하고자 작업한 것이다. 책은 우리 시대의 스토리이자 기록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떤 면에서 개별 책들의 각각의 내용과 더불어 책은 그냥 시대의 상징물로 본 것이다. 뜯어서 알 수 없게 만든 것, 또렷하지 않은 내용과 이미지, 이런 것들이 자아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 정체성을 대신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읽을 수 없게 만들었고 의도했기 때문에 이게 뭐지 하는 정도의 질문을 끌어왔으면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또한 일상의 책이 특별한 물질로 동시에 작품에 드러나기를 원한다. 개념적이면서 아름다운 작업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인성(갤러리인 큐레이터)은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해체는 기존 텍스트 안에서 절대적으로 군림되어진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말한다. 그럼으로써 대상을 무력화하거나 속박하는 성질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이라고 덧붙인다. 돌아보면 창의적 변화는 보편적 개념 및 형식의 해체와 융합, 새로운 가치 창출을 단계로 이어진다. 그렇게 예술은 끊임없이 갱신되어왔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도 책의 본질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방법적 측면이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로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책들은 작가의 해체와 융합을 거쳐 미적 오브제로써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작가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책의 본질에 대한 아름다움으로의 접근이다. 소통이 멈춰버린 지나간 책은 작가에 의해 다시금 우리와 소통되는 무엇으로 변모된다. 비로소 책들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구시대 소통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책들은 이지현의 손을 거쳐 책 본래의 기능이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시각예술의 오브제’로 새롭게 태어난다.‘라고 말했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이지현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0권의 책이 해체되었다.’라고 밝히고 작업 과정은 ‘직접 만든 날카로운 조각칼 같은 도구로 책의 페이지들을 작은 파편으로 한땀 한땀 해체한다. 시간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무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다음 종이의 물성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바니쉬로 여러 번 뿌린 후 열로 굽어 낸다. 굽혀진 종이는 과자처럼 바삭한 질감을 갖고 있다. 그렇게 보존처리가 된 페이지들을 모아 책의 원형으로 다시 복구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기존의 책도 아니고 쿠키도 아니고 미술도 아닌(현대미술은 과거에 우리가 알았던 미술과 차이가 있다) 세상의 새로운 시각적 오브제로 다가온다. 참고로 제작 기간은 대략 책 한 권 작업하는 2주 정도 소요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하고 있는 작품 수는 책꽃이 작업 2점을 포함한 총 30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