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훈 작가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 발간
강대훈 작가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 발간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1.11.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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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산읍 해녀공동체와 바다거북의 상징성
강대훈 작가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 표지
▲ 강대훈 작가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 표지 ⓒ채널제주

바다거북을 좋아하던 한 청년이 있다. 바다거북 연구자를 꿈꾸던 청년은 결국 해양생물학자가 되지 못하고 인류학도가 되었지만, 제주의 해녀 할머니들로부터 꿈에 그리던 바다거북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책은 제주, 그중에서도 동쪽 해안마을인 성산읍의 해녀공동체와 해녀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바다거북이 지닌 상징성을 들여다본 연구서이다.

민족지적 현지 조사 결과를 담은 동명의 논문을 바탕으로 했다. ‘바다거북’을 통해 해녀들의 생업양식과 무속적 조상신앙, 더 나아가 다양한 인간, 비인간 존재들의 행위성을 인정하는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살피고 있다.

학술적인 주제이지만 해녀 할머니들의 생생한 구술과 ‘바다거북’의 상징성으로 수렴되는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유지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 해녀사회에서 바다거북은 용왕의 막내딸로 신성시된다. 물질 작업 중 바다거북을 만나면 반가워서 고둥을 까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몹시 놀라 앓아 눕기도 한다. 죽은 바다거북이 해안으로 떠밀려오면 제를 지내고 바다로 돌려보낸다. 이때 바다거북은 하나의 생물이 아니라 해녀들의 ‘조상’으로 신앙되는 존재이다. 또한 여기에서의 ‘조상’은 유교사회에서 관념하는 ‘조상’과 그 범주가 다르다.

저자는 제주 해녀사회에서의 바다거북의 상징성을 ‘조상’ 개념과 결부하여 들여다본다. 그리고 해녀들의 ‘머정’이라든지 조상과 자손 관계에 있어서의 ‘곱가름’ 원리 등 제주의 전통문화와 민간신앙에 대한 애정 어린 이해를 바탕으로 해녀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다.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곱게 가세요 다시 오지 마세요)라는 말은 해녀들이 거북을 바다로 띄워 보내며 하는 기도이다. 이는 조상에 대한 기도이며 자손의 안녕에 대한 기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듯 ‘희망의 집약체’로서의 조상신앙에 주목하면서, 힘겨운 물질작업 속에서도 희망의 원천을 잊지 않았던 해녀를 이야기하고 있다.

| 저자 소개 |

강대훈

서울대학교에서 해양학을, 동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에서 제주 이주와 제주 사회의 변화를 주제로 인류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타마르 타마르 바다거북』, 『바다박사가 될래요』 등이 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길』,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 체계』, 『인류를 만든 의례와 종교』, 『인간 사회와 상징 행위』 외 여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목차 |

머리말

1. 제주 신화 속 바다거북
2. 바다밭과 육지밭
3. 해녀의 몸과 마음의 테크닉
4. 바다에서의 놀람과 넋 나감
5. 성산읍 해녀의 조상들
6. 용왕할망의 딸들과 그 막내딸
7. 죽은 거북에 바치는 기도
8. 희망의 집약체로서 조상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책속에서 |

p.28

은혜 갚은 거북과 복 받은 해녀할망. 듣고 있으면 마음 한켠이 흐뭇해지는 이런 에피소드 안에서 전설과 신화 속 거북은 해녀들의 생활세계로 내려와 산다. 제주의 고령 해녀들에게 요왕할망과 그 막내딸인 거북은 일종의 ‘살아지는 신화’였는지 모른다(Leenhardt, 1979[1947]: 190).

p.42

해녀의 기량에는 사실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요소가 모두 포함돼 있다. 큰 해녀는 몸이나 ‘머정(운, 행운, 재수)’도 좋을뿐더러 요령과 기술도 뛰어나다. 더 나아가 가족뿐 아니라 벗과 이웃, 조상과 신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의 ‘공동체’와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성 안에 있는 사람이다.

p.77

해녀가 ‘칠성판(시신을 눕히기 위해 관 속 바닥에 까는 얇은 널판)’을 지고 바다로 든다는 해녀노래도 있고, 해녀들은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라는 말도 있긴 하나, 바다가 고달프고 음침한 공간만은 아니며, 바다에 기댄 삶이 어둡고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해녀의 생업엔 빛과 기쁨도 있는데 그 빛은 벗과 조상, 바다에서 온다.

p.82

“조상에서 도와준다.”라든지 “거북도 초상이지, 우릴 지켜주나네.” 같은 말들을 보면, 의미의 강세는 주어부보다 술어부에 찍혀 있는 것 같다.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개별 주체가 조상이라기보다 ‘도와준다’ 또는 ‘지켜준다’라는 동사의 주어가 조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자손을 도와주는 우주 만물에 편재하는 어떤 기운, 인간의 일을 이루어주거나 그르치는 힘과 원리까지도 조상이 될 수 있다.

p.133

한국 무속은 불행한 죽음에 유다른 공감과 연민을 표하지만(최길성, 1991), 궁극적으로는 불행한 죽음뿐 아니라 모든 죽음을 가슴 아픈 일이자 ‘나쁜 죽음’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죽은 자는 융숭하게 대접해서 ‘곱게’ 저세상으로 보내야 한다. 한(恨)과 부정성을 잘 풀어내어 편안해진 조상만이 자손 앞에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p.162

바다거북 배송의례는 조상과 자손의 영역을 경계 짓는 분리의례이기도 하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해녀들은 거북을 신성시하지만 거북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죽은 거북을 띄워보내며 ‘좋은 데로 가라’는 기원에 ‘다시 오지 말라’는 바람을 꼭 덧붙인다. 환대 후의 이 단호한 작별을 제주 무속에서는 ‘곱가른다’고 표현한다.

p.179

요왕할망과 신령한 바다거북은 지난날 해녀들이 꾸었던 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꿈에 속한다. 제주 여성으로서 해녀의 삶은 나의 상상 이상으로 쓰디썼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아무 기쁨도 보람도 없는 일을 누구도 평생 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내게 거북 이야기를 들려줄 때 해녀들은 하나같이 신나 보였으므로 그 표정들을 정직하게 이 책에 담고 싶었다.

| 머리글 |

제주 성산읍 해녀들은 바다거북을 용왕할망의 막내딸로 여겨 신성시한다. 이 책은 바다거북의 그러한 상징성을 해녀의 생업 조건 및 제주의 조상신앙과 연관 지어 탐구한 것이다. 2015년부터 2016년에 걸쳐 나는 5개월간 제주 성산읍에서 민족지적 현지 조사를 수행했고 그 결과물을 2016년 말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논문으로 제출했다. 이 책은 당시의 논문을 고쳐 쓴 것이다.

책을 만들면서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령한 거북이라는 소재에서 유도된 내러티브를 살리는 방향으로 글을 고쳐 썼다. 학술적 측면에서는 2015년과 2016년, 제주 동부의 해녀들에게서 수집한 사회적 사실들을 정직하게 소개하고 거기서 발견되는 한두 가지 규칙성을 드러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바다거북이 좋아서 바다거북 연구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거북 로고만 봐도 가슴이 뛰던 20대 후반의 일이다. 결국 나는 해양생물학자가 되지 못했지만 2016년 여름, 할머니뻘 되는 고령 해녀들을 찾아다니며 바다거북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참 좋았다. 물속에서 거북을 보면 반가워서 고둥을 까 주거나, 크게 놀라 며칠을 앓아누웠다는 해녀의 이야기가 내게는 남 일 같지 않았다. 종종 은혜 갚는 까치와 호랑이, 꾀 많은 토끼와 쑥을 먹는 곰들이 사는 동화와 전설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도 같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당시에 연구자가 느낀 재미와 즐거움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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