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택 시인이 최근 시집 『벌목장에서』가 출간됐다.
시집은 모두 총4부로 구성 되어 있는데 70편에 가까운 시를 담고 있다.
시집 맨 앞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길」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힘겹게 지나쳐 온 삶과 도정을 떠올리게 된다.
“숲속의 희미한 불빛을/ 유일한 길잡이로 삼아” 온갖 유혹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견뎌내며 생의 숲속을 헤쳐왔으나, 그 길의 끝은 보이지 않은 채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길의 속성은 이렇듯 매정하다. 그렇다고 삶의 도정을 중단할 수 없지 않은가. 매정한 길일 수록 각자의 방식대로 그 길을 가는 것이 길에 대한 예의, 곧 삶의 도정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김병택 시인은 이와 관련하여 ”옛날을 이야기하듯 노래한다(「마이웨이」)고 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서 ‘길=삶의 도정’에 대한 예의를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시인은 ‘옛것’의 존재와 친밀성을 바탕으로, ‘옛것’이 현재의 시공간의 틈새로 미끄러져 오면서, ‘옛것’으로 정형화 된 어떤 사물적 인식에 붙들리는 게 아니라 ‘옛것’이 함의 한 존재의 비의성과 마주한다. 그 마주침 자체가 바로 ‘길=살의 도정’이 매순간 존재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의 고향 조천 포구의 풍경을 노래한 「내 앞의 바다 1」은 조천포구의 풍경을 섬세히 더듬는데 이 풍경은 서로 대비되는 모습으로 비친다.

“어린 시절의 철없는 대화들이” 오고 가던 유년 시절의 풍경에는 “만선의 꿈을 이룬 어선 따라/ 부두를 향해 온 힘으로 질주하는/ 물결은 늘 녹색으로 빛”나고,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이 담긴 연북정(戀北亭을“ 휘돌고 온 바람이/ 바다 위를 빠르게 달려”가는 어떤 역동적 활력이 감돌았는데 비해, 현재 조천 포구의 풍경은 문화유적의 형식으로 세월의 흐름속에 옛 정자가 그 자리를 지킨 채 “엣 선비가 한결같이 사모하던/ 마음의 조각들이 흩어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어촌의 활력이 현저히 떨어진 걱인 양 “관절을 일으키며/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소망”이 포구 근해에 “둥둥 떠 있”는 모습으로 형상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김병택 시인이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시의 정동이 근대세계에서 밀쳐놓았던 “옛것”이 지닌 ‘대안의 근대’와 내밀한 접속을 시도하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병택 시인은 “이 시집에 수록한 시들을 천천히 읽으면서 예전에 비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게 바뀌었음을 확인했다”면서 “시를 쓸 때마다 ‘非時’가 아닌 ‘시’를 쓰기 위해 마음을 다잡던 시간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고 밝혔다.
김병택 시인은 1978년 7월 『현대문학 』 평론 천료로 등단했고, 2016년 1월 『심상 』 신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바벨탑의 언어 』, 『한국 근대시론 연구 』, 『한국 현대시론의 탐색과 비평 』, 『한국 현대문학과 풍토 』, 『한국 현대시인의 현실인식 』, 『현대시론의 새로운 이해 』(편저), 『현대시의 예술 수용 』, 『시의 타자 수용과 비평 』 등이, 시집으로는 『꿈의 내력 』, 『초원을 지나며 』, 『떠도는 바람 』 등이 있다.
새미 값 10,000원
[작품 감상]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산을 오르는 길도
바다로 가는 길도 아니었다
일 년에도 수십 차례
생채기 난 다리를 끌며
우왕좌왕 골목을 헤매며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동반자 없이 걸어왔는데
밀려오는 추위,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걸어 왔는데
숲속의 희미한 불빛을
유일한 길잡이로 삼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