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열린 제70주년 4.3항쟁 광화문 국민문화제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지난 7일 낮 12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북광장 곳곳에서 펼쳐진 다채로운 4.3 70주년 문화제 행사는 제주4.3의 의미를 서울 시민들과 각 세대에게 환기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이번 문화제를 주최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아래 4.3 범국민위)는 “촛불의 역사가 이뤄진 곳에서 제주 4·3이라는 아픈 기억을 모든 세대가 공유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행사의 의의를 밝혔다. 4.3 범국민위는 이를 위해 4.3 유족 단체는 물론 다채로운 예술 장르와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참가자들을 초청, 예술 공연과 체험 부스 등을 운영했다.
특히 60여개의 참여 부스가 설치돼, 제주와 전국 참여 단체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먼저 4.3 희생자 유족회를 비롯해 4.3평화재단, 4.3연구소, 제주다크투어, 제주여성자활지원센터, 제주작가회의, 제주민예총,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출판인연대, 제주출판인연대 등이 동참해 제주의 목소리를 광화문광장으로 전달했다.
청소년들도 적극 동참했다. 서울 강서·양천지역 13개 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강서학생자치연합’이 피켓 홍보 등에 열을 올리며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제주 대정고등학교와 오현고등학교 학생들도 4.3 단편영화와 그림자 인형극을 선보였다.
또 재경 4.3희생자·피해자유족회 등 ‘육지’에 사는 제주도민은 물론 4.3과 같이 역사적인 아픔을 공유하는 단체들도 광화문광장을 지켰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여순항쟁 70주년을 알렸고, 한국전쟁 유족회는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특별법을 제정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 10월 항쟁 유족회, 노근리 국제평화재단, 4.16재단(준), 3.1민회 조직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4.3 항장 70주년 문화제의 자리를 빛냈다.
이와 관련 4.3 범국민위 측은 “애초 연인원 3만 명이 찾을 것을 예상했다”며 “날씨가 꽤 쌀쌀했던 것을 감안하면 4.3 유족을 비롯해 많은 인원들이 광화문 광장을 찾아 4.3 문화제를 즐겼다”며 “특히 준비한 4370신문과 <4.3이 머우꽈> 책자는 동이 났다. 그 만큼 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관심이 컸다”고 밝혔다.
컨테이너로 만들고 대형 LED 화면을 외벽으로 채운 4.3정보관과 국화 1,000 송이로 장식한 4.3 분향소도 문화제를 찾은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정보관과 분향소는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4.3 범국민위가 운영했다.
이날 문화제 공연은 낮 12시 식전행사의 일환으로 레이지본·3호선버터블라이·어쩌다밴드·씨없는 수박 김대중 등의 인디밴드들이 무대에 오른 ‘혼디부르게 바당의 노래’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이 출연한 예술난장, 역사맞이 거리굿-해방과 한라 등의 식전 공연이 이어졌다.
오후 6시 30분터 영화감독 변영주, 제주 촛불집회 사회자 김남훈의 진행으로 이어진 본 공연인 ‘70년, 끝나지 않는 노래’는 사우스카니발, 마임 공연 <일어나요 할망>, 4.3프로젝트 밴드, 극단 경험과상상의 연극 <내이름은>, 최상돈, 4.3평화합창단, 안치환과 자유, 멜로망스, 전인권 밴드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본 공연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등 정치인들도 4.3 유족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이날 4.3 희생자유족회가 주축이 된 4.3평화합창단과 무대에 오른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장은 “3만 희생자 영령 모두가 오늘 자리를 함께 해주신 것 같다”며 “개정된 4.3특별법에 근거, 아직 다 못한 4.3의 완전한 해결을 해내야만 한다.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광화문 국민문화제를 주최한 4.3 범국민위는 이날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광화문광장 분향소 무대에서 ‘4·3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들 세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제주 4·3에 대한 미국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미 대사관 측이 “기자가 있으면 공개서한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 대사관 정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결국 이 공개서한은 9일 오전 미 대사관 측에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