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코스 총 연장 250km를 완보 했다. ‘대자연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 다리가 의사입니다.’ 대한걷기연맹의 슬로건이다.
지난 2월11일부터 15일까지 5구간으로 나눠 매일 50km 걷는 제7회 제주워킹그랑프리대회에 참여했다. (재)대한걷기연맹(KWF)과 제주특별자치도걷기연맹이 공동주최하고 한국걷기그랜드슬램대회의 일부로 치러지는 ‘울트라 워킹’이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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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국걷기 그랜드슬램대회’의 첫 번째 코스는 제주다. 두 번째는 4월 원주 무박2일 100km, 세 번째는 9월 밀양 110km, 네 번째는 10월 새만금 66km 모두 완보해야 한국최고의 걷기달인이라는 ‘한국걷기그랜드슬램 워커(KGS Walker) 인증서’를 받는다.
LA에 사는 부부와 전국에서 워커들이 남자 43명 여자 17명, 77세의 최고령자가 참가하여 노익장을 과시하며 열전을 벌였다. 첫날 새벽 5시 기상하여 식사와 스트레칭,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6시 해드랜턴과 경광등을 배낭에 매달아 어둠을 해쳐 나갔다. 전국 건각들 틈에 끼어 걷다보니 긴장도 잠시였고 사방이 어둠속에서 세찬 눈발에 얼굴을 들 수 없고 빙판길이지만 워커들에게는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해안도로와 마을산책로를 걷노라면 마음은 급한데 눈을 동반한 강한 앞바람에 뒷걸음이나 옆걸음질하기 일쑤다. 파도는 바위를 삼킬 듯 달려들다 우리를 덮치거나 거품만 남기고 사라진다. 한담마을에 도착했다. 문어라면 맛 집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여기저기서 거닐고 있다. 월령리 바닷가는 나무데크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속살을 드려다 볼 수 있다. 바다와 돌담집, 야생화가 어우러진 한폭의 정원 같지만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자연이다. 발톱이 아려오며 신발이 꽉 차오르지만 절뚝거리며 1구간 판포리까지 45.7km를 완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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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은 50.7km 국제컨벤션센터까지이다. 바람이 많이 잦아들었다. 짙은 먹구름사이로 달과 별이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어 우리를 밝힌다. 해양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에 여명이 밝아온다. 자구네 포구에 들어서니 유난히도 햇살이 눈부시다. 산방산 주위 도로공사로 모래언덕을 내려 백사장을 걷노라면 발이 빠져 통증이 더하지만 완주해야한다는 의지는 더욱 강렬하다. 이렇게 장거리 워킹은 변수들이 많이 돌출된다. 먼나무 빨간 열매들이 자태를 뽐내지만 눈과 생각은 온통 양발에 쏠린다.
3구간은 54km 표선사거리까지이다. 워킹하기에 좋은 포근한 아침이다. 강정마을에 들어섰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낡은 현수막들이 덕지덕지 걸려있고 길가 소형천막에는 라디오 소리와 2~3명이 얘기를 나눈다. 아직도 아물지 못한 당시 상황을 엿 볼 수 있다. 서귀포에서 바라본 눈 덮인 한라산은 햇볕의 조화에 더욱 영롱하기만 하다. 남원 큰엉을 지나며 데드포인트(dead point)를 느낀다. 포기와 완보 갈등으로 뇌리를 꽉 메운다. 룸메이트 병석이 형은 뒤돌아보며 ‘뭐해요! 남들도 아프지만 걷고 있어’ 하며 진통제를 내민다. 노을을 바라보며 무상무념 속에서 걸었다. 한 아주머니가 차를 멈추고 나를 불러 세워 타라고 한다. 250km 걷기대회이므로 마음만 받겠습니다. 놀라는 표정으로 꼭 완보하라며 떠난다.
4구간 45.7km 구좌읍 평대리 까지, 마지막 Finish Line은 탑동공연장이다.
제주의 지금은 관로공사로 도로가 파헤치거나 새로운 도로를 만들고 비경이 뛰어난 곳은 팬션과 타운하우스, 리조트 건축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렇게 대자연에 60명의 워커들은 극한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데드포인트를 겪으며 심신이 만신창이 되고 두다리와 두발은 나의 몸을 지탱하며 완보를 위해 감내해 준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저자 김영길의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걸어 면역력을 기르는데서 치료해법을 찾듯이 머지않아 워킹문화의 붐이 일어나고 명문대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완보인증서를 받아 들고 인증샷으로 나의 5일간의 사투는 끝났으나 작별인사에서 ‘4월 원주에서 만나요’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