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칼럼](173)레닌언덕
[현태식칼럼](173)레닌언덕
  • 영주일보
  • 승인 2017.02.17 1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모스크바 레닌언덕 위에서. 모스크바에서는 높은 산이나 언덕을 볼 수 없고 그저 평원의 연속이었다. ⓒ영주일보

모스크바시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이다. 올림픽경기장, 모스크바대학도 볼 수 있다. 이채로운 것은 베트남 신혼부부가 결혼식에서 입은 드레스복장 차림으로 이 언덕을 거닐며 사랑을 나누고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소련공산주의는 냉혹한 사람의 집단같지만 북한과 달라 개인적으로는 이념과 체제로 사람을 속박하는 것 같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자본주의가 많은 부분에 스며든 듯 하였다.

레닌 언덕 위에 등신(等身)의 고르바쵸프와 옐친상을 세워놓고 사진사들이 외국인을 고르바쵸프나 옐친상과 같이 포즈를 취하게 한 다음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돈을 받고 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행위를 하면 대통령을 모독하거나 희화화한다고 금지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어디를 가나 불편한 것은 변소였다. 레닌 언덕을 구경하다 용변이 급해 가이드에게 공중변소를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가르쳐주어서 여럿이 몰려가 보았다. 변소는 사용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잠겨있었고 자물쇠는 녹슬고 삭아있었다. 변소로 들어갈 수 없어 변소 주위에서 용변을 보았는데 다행히 주위가 숲으로 덮혀있었다.

이날 1시 35분에 우크라이나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거리의 일반식당은 보이지 않으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가다가 차가 정지하면 물건파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붉은광장에서는 걸인과 잡상인이 많은데 특별히 이 잡상인들이 모두 젊은 청년이다. 푸쉬킨과 동격으로 문학가 세브첸코의 동상이 거대하여 장엄함까지 느끼게 하는데 그 표정은 깊은 사색에 잠기어 명상의 산책을 하는 듯 하다.

소련 청년들이 보잘 것 없는 물건을 팔려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서 비감을 금치 못했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이나 푸쉬킨 미술관을 관람하면 소련인의 예술적 탁월성을 알 수 있다.

○ 서커스 관람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본 서커스는 웅장하고 아기자기하다. 건물과 시설이 대국의 스케일을 짐작하게 한다. 오싹한 장면이 매혹을 느끼게 한다. 아이러니하게 기마병이 러시아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모양은 소련 연방의 퇴조를 말해주는 듯 했다.

서커스는 신기라 할만 했다. 슬라브족은 뚱뚱하고 거구일거라는 선입감은 매우 잘못이었다. 서커스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보통 키 만큼 하고 여자는 허리가 가냘프고 잘록해서 날씬하다. 그런데 묘기는 대단하다. 비둘기, 독수리 참매, 고양이, 강아지, 돼지, 닭, 오리, 거위가 한 팀이 되어 소방수 역할을 하는 것이나 줄타기, 그네뛰기, 마술 어느 것도 정말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말타기를 인형 주무르듯 하는 것을 보니 기마민족이요 수렵민족의 후예이고 외발자전거 타기, 얼음판 위의 서커스는 얼음 덮인 벌판에 사는 민족임을 입증해보이는 듯 하다. 이 과정 모두를 연약한 여자가 마스터하고 있으니 놀랍다.

문화민족인가, 반문명적 사람들인가? 탁 트인 넓은 길과 넓은 녹지대를 사이에 두고 만든 보도를 산책로처럼 만들어 유유히 걸어가는 무표정한 소련인. 참 여유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푸쉬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좀 음산한 듯한 분위기에 젖어 대문호, 거장들이 될 수 있었는지.

우뚝한 건물들이 즐비한데 요즈음 신축한 건물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고색이 창연하다 하기도 그렇다. 폐가만 같다. 헐뜯어져 너덜거리고 저 높은 곳에 있는 문은 부서진채 버려진 듯 하다. 속에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다. 거리에는 먼지투성이고 빛바랜 낡은 차가 덜덜거리며 달린다. 이것이 문명사회인가 의심스럽고 야만인 집단으로 착각하기 쉽다.

게다가 맥도널드사의 햄버거 하나를 사기 위하여 수백명이 광장을 메우고 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햄버거 사러 몰려온 것이 그들의 일과라 하니 개인이나 국가가 희망은 있는지 앞날에 대한 기대는 있는지 예측키 어렵다. 공식 환율은 미화 1불대 소련화 1.7루블인데 암시장이나 거리에서는 1불대 32루블이나 1불대 35루블로 환전한다니 공산주의국가 소련은 나라의 경제정책 자체를 포기한 것인지 과객인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레닌 광장이나 붉은 광장의 바실라성당이나 크레믈린궁을 보면 옛날의 영화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고 푸쉬킨 박물관의 돌기둥에서 슬라브인의 솜씨와 괴력을 느낄 수 있다.

미술품을 소장해놓고 관람객의 손이 가까이 가면 득달처럼 관리하는 할머니가 나타나 만지지 못하도록 소장품을 소중히 관리하는 것을 보면 문화인임이 분명하다.

볼쇼이 발레를 관람해서 경지높은 예술에 접해보고자 했으나 마침 이태리 가극이 공연된다고 하여 소련적인 것을 보러 서커스관람을 갔었다. 입장자들이 오바, 코트 같은 것을 모두 벗어 맡겨놓고 관람석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보면 관중이 예술에 대한 애호와 엄숙한 태도가 높은 문화인이고 묘기가 나올 때마다 끝도 없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을 보면 어디 이들에게 음산한 구석이 있다거나 반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해보니 갈피를 못잡는다.

소련의 그 스케일, 그 여유! 아직은 젊은이가 거리에서 관광객에게 장난감 시계나 우편엽서 나부랭이나 팔려고 치사한 행동을 하지만 히틀러를 몰락시키고 나폴레옹을 패망시켰고 세계의 반쪽을 지배하였던 옛 영광을 찾을 숨은 힘은 간직한 듯 하였다.

이들에게 자유경제체제가 장착되려면 우선 레닌, 스탈린으로 이어진 장기간 뿌리내린 공산주의 모순과 중증환자 상태의 병증 치유에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소련은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동면하지 않을 수 없을만치 추울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그 생각은 틀렸다. 겨울에도 영하 18˚~20˚ 정도로 밖에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단다. 이 온화한 기후 광활한 국토, 무한이 매장된 자원, 끈기있는 국민이 건재하면 역사의 무대 위로 복귀하는 것은 시간만이 해결할 것 같다.

아직은 공산주의 후유증으로 멈칫한 소련과 중국이 북극곰처럼 웅크리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일본을 동쪽에 둔 우리는 역사의 무대에서 뚜렷한 존재로 남기위하여 정신을 차려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주)퍼블릭웰
  • 사업자등록번호 : 616-81-58266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광로 181, 302-104
  • 제호 : 채널제주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제주 아 01047
  • 등록일 : 2013-07-11
  • 창간일 : 2013-07-01
  • 발행인 : 박혜정
  • 편집인 : 강내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내윤
  • 대표전화 : 064-713-6991~2
  • 팩스 : 064-713-6993
  • 긴급전화 : 010-7578-7785
  • 채널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채널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channel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