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칼럼](149) 비세한 의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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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일보
  • 승인 2016.11.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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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하루는 연락이 있어 가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현역 국회의원이 상대해주지 않는 의원이 모여 있었다. 신문지상에 의회의장 물망에 오른 의원도 와 있었다. 아무리 구심점이 없어도 그냥 내몰리는대로 흩어지면 의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단합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물망에 오른 의원에게 의장 출마를 권유해도 사양하는 것이다. 경제적 여건이 안되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의원이 자원하지도 않았다. 저쪽이 국회의원 장악하에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데 감히 도전장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의회 개원식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는 물망에 오른 의원보고 의장 출마를 권유하면서 의장직 수행이 어려움이 많으면 월 얼마씩 지원해드리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래도 다른 의원이 의견일치가 안되었다. 나는 여기서 경제적 능력도 그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큰 요소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의원이 나를 옆으로 불러내어서는 나보고 의장 출마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의회의 한 그룹의 보스가 될 운명이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도와 의회를 구성하고 평의원으로 내 소신을 펼치려고 의원이 된 사람이지 감투에 욕심이 있거나 명예를 탐해서 여기 온 사람이 아니다.

이 그룹에 속하게 된 것도 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씨가 현씨라서 국회의원 K씨가 외면하기 때문에 내가 지방의원 하면서 국회의원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따라가는 비굴함을 보이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지방의원은 성격상 그럴 필요도 없는 직책이기 때문에 여기 와 있고, 여기 온 이상 이 팀이 뭉쳐 의원생활을 잘 해보자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조정작업을 하면서 의장하는 사람에게 월 얼마씩 지원하겠다는 발언이 거기 모인 의원들에게는 마음의 큰 동요를 준 것 같았다.

의장하고자 하는 사람을 지지해서 의장이 되면 지지한 대가로 덕을 보려는 것이 일반적 심리인데, 의장 지지하고 의장이 되면 그 의장의 위상을 지켜주기 위하여 사재를 털어 지원하겠다니 듣는 사람이 감동을 한 것이다. ‘이 사람이 의장감이다’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거기 모인 의원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의장출마를 권유했다. 이제 나도 끝까지 사양하면 지리멸렬하고 말 처지였다. 국회의원의 지원과 지시는 없더라고 지방의원이 됐으면 독자적 판단과 독자적 행동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25만 제주시민의 권리를 지키고 제주시의 발전을 도모할 자격이 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 모인 모든 의원의 의견이 똑 같다면 제가 용기를 내겠습니다. 지든 이기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쪽에서도 의장할 사람을 내놓았다 하는 것을 보여야 앞으로 의원 활동에 이익이 되지 유야무야 해버리면 저쪽에서 우리를 하찮게 보게 되어 두고두고 푸대접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제가 희생양이 되어 출마하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찬밥 신세인데, 우리끼리 자리 싸움을 하면 실낱같은 희망도 없게 됩니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동조자를 모아야 하며, 저기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을 설득하여 우리 편으로 하려면, 우리 쪽에서는 감투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 유대에 의한 결집체임을 보여야 하니 자리를 전연 거론하지 않고 완전히 마음 비운 상태로 단결해야 합니다. 이 약속이 없으면 나는 앞장서지 않겠습니다”고 하여 모든 분에게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의장 출마 의사를 밝히고 의장 선거 운동에 들어갔다. 그날부터 의회 개원일인 1991년 4월 15일까지 합숙을 하면서 표 점검을 하고, 모든 의원이 맹렬히 활동하였다. 흥정하러 다니는 팀도 설득하여 우리 편으로 만들었다. 이제 세력이 백중세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쓰레기 매립장 관계로 입건된 의원을 이해관계를 잘 설명하여 우리편으로 하였다. 법원에 이해가 되도록 해서 처벌이 경감되도록 노력해준 것이다.

드디어 개원일이 박두하였다. 저쪽은 자신감에 차있는 태도였다. 의장수락 연설문까지 마련하여 왔고, 가족이 잘 차려입고 방청석에 앉았고 당선 꽃다발도 준비하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것은 아예 생각도 안했다. 가족도 한 사람 오지 않았다. 의회는 제주시민을 위하여 일하는 봉사와 희생의 자리이지 개인의 자랑이나 생색내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의장 후보로 나가는 이유 한 가지를 더한다면 의회를 어떤 외부세력에 굴종하거나 예속되거나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방화 시대의 사명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고, 의회가 이권에 탐하거나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고 힘있는 자의 비호세력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려면 평소의 소신을 내가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고 믿고 또 이 일은 내가 꼭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개원식날 최고령자인 박명윤 의원이 임시의장이 되어 의장 선출에 들어갔다. 나는 반드시 내가 당선되리라는 생각을 버렸기에 매우 담담했다. 저쪽은 H의원이 의장 후보인데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제주시 정보기관이나 언론도 그 의원이 당선되리라 예상했다. 그 의원은 운수사업과 관광사업을 하여 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나는 살기 위하여 사회 밑바닥을 헤매고, 건강이 나빠 사교에 약점이 있고, 성격이 권력에 아부하지 않아 힘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가지 않고, 오직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사회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왔을 뿐이다. 어느면 내가 훨씬 훌륭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특히 권력층은 나의 생각과 행동을 탐탁하지않게 생각했음도 나는 안다.

투표결과는 언론·정보기관의 예상을 깨고 내가 12:11, 한 표 차로 이기고 재적의원 과반수를 넘어 당선되었다. 개표도 뭐가 잘못 되었나 해서 몇 번 검표하고 뜸을 들여서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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