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금고 이사장실로 양두훈 경로당건립추진위원회 위원이 찾아와 ‘모금나가야 할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위원장도 매일 나오지 않는데 우리만 매일 나갑니까? 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위원장 나오는 날에 뒤따르지요” 하였더니 양두훈씨 말씀이 “이사장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어” “제가 무얼 모른단 말입니까?” “이사장, 생각해보자. 소도 과다하게 짐을 지우면 걷지 못해. 그러면 누가 나쁜가, 걷지 못할 소에게 과다하게 짐을 실은 사람이 잘못이지. 능력의 한계가 있는데 위원장만 믿으면 일이 안되고 이 일이 안되면 나와 이사장만 욕먹어. 위원장 믿지 말고 나와” 아뿔싸, 양두훈씨의 말을 듣고, 나는 아직도 봉사에 대한 희생정신이 얇음을 깨달았다. 양두훈씨가 나에게 충고 겸 타일러준 것이다. 나는 나가야 한다. 내가 힘들더라도 이 분 하고 같이 일을 해야지 하고 결심하고 그 날부터 내 일처럼 총책임자처럼 매일 모금차 거리로 나섰다.
기업체, 호텔, 재력가를 찾아다니며 강요도 하고 애걸도 하였다. 어떤 때는 노인회 회장과 임원들이 나서기도 하고 동장이나 위원장을 대동하기도 하고, 추진위원을 나오라 독촉해서 같이 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양두훈씨와 나는 매일이다시피 하였다. 더우나 추우나 불문하였다. 궂은 소리도 많이 듣고 어떤 때는 듣기 싫은 말도 하였다. 인심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였다. 2년 가까이 노력하여 2억을 넘는 액수를 희사받았다.
인구가 지금처럼 4만이 넘는 것이 아닌 1만명 주민이 사는 신생마을이다. 노태우정권 초기때인지라 부동산이 침체하여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닌 때이다. 그래도 노력하면 결과가 있는 법, 끈질긴 노력과 열성으로 2억원을 넘게 모금 성과를 올린 것이다. 그러나 노인회 할머니도 참여하고, 어려운 사람도 단돈 5천원도 희사하는데, 신제주에서 제일 큰 기업인 그랜드호텔은 냉정하기 그지 없었다. 수십 차례 방문해도 거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