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메뉴
-초인 현달환-
아침,
엄마의 잔소리 먹고
점심,
상사의 핀잔 먹고
저녁,
아이들 원성 먹고
아빠는
하루 세 번 먹어도
늘
배고프다.

나는 아버지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만들어서 내민다. 그 한잔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집안 이야기, 동네 이야기, 가족, 형제 이야기를 하면서 칭찬과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힘내자고 하면서 즐거운 상상을 한다.
21세기에는 아빠만 남고 아버지는 사라지고 있다. 그로인해 존경의 대상에서 동등한 대상으로 바뀌고 있음으로 인해 존경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나만 알고 개인주의로 변하게 했을까. 과거처럼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꽃이 피우던 시절은 꿈으로만 남아 있다.
우리사회가 개인주의가 나타난 것은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건대 개인별 밥그릇의 등장이라고 생각해본다. 과거 둥그런 상에서 큰 양푼(낭푼)에 밥을 먹던 시절, 함께 나눠먹던 그 때가 행복이 있었다. 아이들은 배고프던 시절에 굶지 않으려고 잠도 일찍 깨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왜냐하면 밥 먹을 때 함께 먹지 못하면 자기 몫은 사라지기에 그만큼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이가 배고플까봐 부모들은 수저를 한번 씩 거르면서 아이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배려도 해주었다.
옆집에 어느 날 놀러 갔는데 아버지 밥을 따로 차리고 올리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부러워했다. 아버지 밥상에는 뚜껑이 있는 밥공기에 반찬도 넉넉하고 먹음직스런 반찬들이라 다들 아버지의 밥상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밥상은 존경의 대상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우리들도 아버지와 같은 밥상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개인 밥공기에 밥을 먹으면서부터 늦게 일어나도 자기 밥그릇은 남아 있기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그런 배려가 없어졌다. 자기 밥공기는 늘 있기에 서두를 필요도 없고 아무 때나 먹어도 되는 생활이 되었다. 그것이 사회생활에까지 번져서 나만 아는 그런 개인주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본다. 그것이 타인은 물론 가족에까지 미쳐 이제는 개인주의가 사회전반에 깔려 과거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시대로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21세기엔 확실하게 남자들이 불쌍해졌다. 남자라는 인간은 지구상에 여기저기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수컷중의 한 종류로 전락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들이여, 그래도 힘을 내자. 남자, 그대에게는 바라볼 수 있는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온전히 우리는 눈을 돌리자.
올해도 추석이 가까워지고 있다. 남자는 그래도 남자다. 아빠, 힘내세요!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착한 아이들이 되어보자. 남편에게 칭찬 한마디 해주는 상냥한 아내가 되어보자. 직장 동료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는 멋진 상사가 되어보자. 올 추석에는 누구나 풍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