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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별세]리더십 요체는 '완벽주의 토대로 한 역동성'
[박태준 별세]리더십 요체는 '완벽주의 토대로 한 역동성'
  • 나기자
  • 승인 2011.12.13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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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日연구소 "포철 성공요인은 박 회장의 지도력, 통찰력, 사명감"
ㆍ故이병철 "군인의 기와 기업인의 혼을 가진 경영 불패의 명장"

▲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05시 20분께 서울 신촌 연대세브란스병원 중환질에서 지병인 폐질환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사진은 지난 2007년 11월 8일 팔순연 때 인사말을 하는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모습.

급성 폐 손상으로 13일 별세한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前 국무총리)은 군인에서 경영인으로, 다시 철강인으로 몸을 바꾸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런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 요체는 '철저한 완벽주의를 기초로 탁월한 통찰력, 신속한 판단력, 강력한 추진력을 조화시킨 역동성'으로 요약된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도 박 회장에 대해 "포철(현 포스코)의 첫 번째 성공요인은 모험사업 추진의 리더로서 지도력, 통찰력, 사명감을 충분히 발휘한 박태준 회장의 공헌이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그의 이같은 리더십은 애국적 사명감과 조화를 이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명을 일으켰다. 군인 신분에서 처음 경영인으로 변신한 것은 1964년 대한중석 사장에 임명되면서 부터다. 그는 사장 취임 1년 만에 대한중석을 흑자기업으로 바꿨다. 이를 눈여겨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에게 종합제철소 건설 특명을 내리게 된다.

포스코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자본은 물론 기술, 경험, 자원 등 철강업 육성을 위한 어느 하나의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양질의 철강재를 생산해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다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의지 하나로 매진한 결과물이었다.

최고 경영자로서 박태준 당시 사장(現 명예회장)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포스코 내외부의 도전을 소화하고, 제철보국의 기업이념과 소명의식, 책임정신과 완벽주의, 철저한 투명경영, 인간존중의 경영이념을 실천적으로 보여줬다.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도 뜰 수 없는 공사현장을 둘러 본 박정희 대통령이 '남의 집 다 헐어 놓고 과연 제철소가 되기는 되는 건가'라고 근심할 정도로 어려운 여건이었다.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은 제철소 건설이 실패할 경우 '우향우(右向右)'해 동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을 각오까지 했다.

여기서 유래한 게 '우향우 정신'이다. 당시 포스코인들의 각오를 담은 표현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몇 사람의 사표나 희생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거대한 역사적인 작업에 동참했던 자부심, 자신들을 다스리는 채찍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 1973년 6월9일 오전 7시30분 국내 역사상 최초로 포항 1고로에서 쇳물이 터져나오자 감격의 만세를 부르고 있는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사진 = 포스코 제공)

특히 박 명예회장은 1970년 가장 먼저 착공한 열연공장 건설이 지연되자 열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행정·사무직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을 공사현장에 투입시켜 공기를 만회했다. 이 같은 정신과 노력으로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를 예정보다 1개월 앞당긴 39개월 만에 준공했다.

제철소 공기 단축은 성공에 대한 자신감, 집념, 열정과 함께 그만큼 원료 재고비용을 절감해 현금흐름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임직원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투지로 다른 회사들이 4~5년 만에 건설하던 제철소를 포스코는 2~3년 만에 건설했다. 1기 건설에 소요된 t당 투자비도 다른 회사의 500달러에 비해 절반인 26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이같은 전통은 광양 제철소 건설에도 이어졌다.

박태준 사장은 공기업 체제에 따르는 비효율과 부실을 막기 위해 조직의 자율과 책임문화 정립에 중점을 뒀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자연스럽게 완벽주의로 연결됐다.

1977년 3기 설비가 공기지연으로 고전하고 있을 때에도 발전 송풍 설비 구조물 공사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80%정도 진행된 상태였지만 부실공사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며 모두 폭파한 일은 완벽주의의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회사 창립초기 제철소를 건설하기도 전에 주택단지 부지를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인 주거안정 정책은 우수인력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태준 당시 사장은 "직원들의 주거가 안정되어야 정상적인 회사 업무가 가능하며, 장기간의 건설기간 동안 안심하고 현장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택과 자녀교육 문제까지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자가주택 제도를 도입했다.

1969년 당시 IBRD 실무자로서 한국의 일관제철소 건설에 부정 적인 보고서를 내 KISA를 와해시킨 당사자였던 자페(J.Jaffe)와 인연도 유명하다.

1986년 4월 박태준 회장이 IISI총회를 마치고 런던에서 자페를 초청 해 "지금도 당신의 그 보고서가 옳다고 믿느냐"고 질문하자 자페는 "현재도 그 보고서가 옳지만 박태준 회장이 상식을 초월하는(Beyond common sense) 일을 해 보고서를 틀리게 했다"고 답변했다.

▲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17시 20분께 서울 신촌 연대세브란스병원 중환질에서 지병인 폐질환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사진은 박 명예회장이 지난 9월 19일 경북 포항 지곡동 포스코 한마당 체육관에서 퇴직직원들과 사진전시회를 관람하는 모습.

1988년 포스코를 방문한 자페는 포스코의 성공요인으로 지도자의 끈질긴 노력, 설비구매의 효율성, 낮은 생산원가, 인력개발, 건설기간의 단축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1978년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은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당시 신일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라는 대답을 듣고 한동안 중국에서 박태준 연구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같은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의 전통,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도전정신, 책임의식과 완벽주의, 철저한 투명경영, 인간존중의 경영이념은 글로벌 포스코의 정신적 자산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90년 초반 노조활동이 정치화되려고 할 즈음 박 회장은 "우리나라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간산업인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세워야 했고 자금이 전혀 없는 처지에 설상가상 국제 차관단마저 배반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대일청구권 자금 일부를 전용하여 기사회생했다"며 "앞으로 100년, 200년의 역사에서 세계의 다른 어느 철강회사와 비교하더라도 항상 최고의 당당한 포철로 존재해야 합니다. 직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동참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목표입니다"라며 노조원들을 설득했고, 지금까지 포스코에서는 단한번의 노사분규도 발생하지 않았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으로 살았던 박태준은 그의 방식으로 빈곤과 부패에도 당당히 저항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면서 청탁을 과감히 거절했다. 그 중에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종규 청와대 실장의 청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강직함을 알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를 알고 난 이후에는 그 누구도 청탁을 하지 못했다.

'철강왕'이라 칭송받는 미국의 카네기는 당대 35년 동안 연산 조강 1000만t을 이루었지만, 박태준은 당대 25년(1968~1992년)동안 연산 조강 2100만t을 이뤘다. 기술력과 자본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카네기보다 짧은 기간에 그 2배가 넘는 철강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열정 때문이었다.

헬무트 하세 전 오스트리아 국립은행 총재는 박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세계의 모든 철강인들이 포철이 성공리에 건설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매우 큰 규모의 차관을 포철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며 "박태준은 매우 끈기 있는 사람이다. 모든 상황이 불리한 여건에서의 협상은 피곤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나를 꾸준히 설득해 우리가 포철 1기 공사에 큰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당시 "지금까지 22년 세월동안 박 회장과 나는 사업보국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길벗이었다. 신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서슴없이 '철'이라고 대답한다"며 "군인의 기와 기업인의 혼을 가진 사람이자 경영에 관한한 불패의 명장이다. 우리의 풍토에서 박 회장이야말로 후세의 경영자들을 위한 살아있는 교재로서 귀한 존재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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