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도 애인이 있다
-초人 현달환-
얼굴이 못나도
그 못난 얼굴 좋아하는
그런 사람 있더라.
심보가 독해도
그 독한 심보 좋아하는
그런 사람 있더라.
얼굴이 곱다고
마음이 예쁘다고
그래야만 애인이 있다고
착각하지 말기
저 못난 바퀴벌레도
지 좋아하는 애인
하나는 있더라.
(제주문학2015년 통권 62집 봄호 수록)

그러나 인간은 위대한 발명가였다. 거울이란 물건을 만들고 삶에 밀접한 물건으로 되면서 인간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자기 뒷모습을 쳐다볼 수 있었다. 얼굴에 보이는 자기의 붉은 살색으로 보이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가 있었고, 지나온 일들에 대한 반성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거울은 말이 없다. 오로지 자기 혼자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에서 비치는 모든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자칫 위험한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있고, 자기 등을 쳐다 볼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사람이다. ‘그대’라는 존재이다. 그대가 있음으로 인해 나의 얼굴을 볼 수가 있고 나의 등을 쳐다볼 수가 있다. 그대가 있음으로 인해 나의 얼굴이 부끄럽지도 않고 나의 궤적이 독선적이지 않다.
혼자라는 고독은 그래서 슬프다. 현대사회는 혼자라는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다. 모든 것은 1인 가족을 위해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인간은 동물이다. 그 동물의 특징은 집단, 무리라는 형태의 모습을 가져야 하는 데 혼자만 살고 있는 삭막한 현대사회 거미줄과 같은 그물에 걸려 꼼짝을 못하고 있다. 어쩌면 혼자 살기 좋은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삶인가? 나 혼자 어느 날 컴퓨터를 하고 있는 데 바퀴벌레가 얼굴을 내민다. 혼자 있는 나에게 그 벌레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저 바퀴벌레는 짝을 잃어버려 외로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퀴벌레도 애인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사회에 스마트폰에서 카카O톡이나 밴드 등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나 답답한 것 등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외칠 수 있는 곳,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그런 장場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향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운 여름날, 혹은 추운 날이라도 그대가 카톡 혹은 밴드에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따뜻할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 아무리 잘나고 멋진 사람이 있어도 대화할 수 있는 그대가 최고일 것이다. 그대가 시나브로 다가오는 이 시대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그대’가 되자. 누군가에게 ‘애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