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고 정책의 실패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수요 예측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작정 너무 많은 숫자를 지정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10학년도에 1차로 자율고 13개교를 지정했다. 이때만 해도 자율고는 평균 경쟁률 2.41대 1을 기록하는 등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첫해 성공에 고무된 서울시교육청은 이듬해 13개교를 추가로 지정했다. 1년 만에 자율고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자율고에 지원하는 중3 학생들은 전체 11만3000여명 중 보통 상위권 20% 안에 드는 2만명 정도다. 이 중 외국어고나 국제고 등으로 빠져나가는 학생을 빼고, 비싼 등록금 때문에 지원하지 못하는 학생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1만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분석이다. 결국 자율고 총정원 1만427명을 채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성별 불균형도 큰 원인 중 하나다. 자율고 26개교 중 남고는 19개교인 반면 여고는 3개교, 남녀공학은 4개교에 불과하다. 즉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자율고는 7개교 밖에 없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에 비해 특화되지 않은 커리큘럼 역시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자율고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500만원 정도로 웬만한 국공립대 수준인데 비해 교과과정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입시과목을 조금 더 늘린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자율고로 첫 문을 연 동양고와 용문고는 2년 연속 저조한 지원률을 기록, 지정을 취소하고 일반고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동양고의 경우 지원자가 한 명도 없어 사실상 내년에는 신입생이 1명도 없게 됐다. 내년에 일반고로 전환하고 2013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받으면 2학년이 없는 채 1학년 일반고생, 3학년 자율고생이 한 학교에 공존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끝까지 자율고 정책이 실패했음을 부정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계속되는 미달 사태에 대해 "자율고 제도가 정착돼 가는 과정"이라며 "일부 학교의 정원 미달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따라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대영 서울교육감 권한대행 역시 "정원 미달이 곧 실패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현재의 자율고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 교육청 고위관계자는 "동양고의 경우 해당 법인이 자율고로 지정된 뒤 잘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 믿고 자율고로 전환해 준 것"이라며 "우리도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육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자율고 정책 실패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