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다. 이 나라에서 나만이라도 철저히 정산하여, 두고두고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자식들이나 주위에 본보기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려울 때 필요할 때 외상을 주면서 도움을 주신 분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고, 그래서 이 사회가 믿음이 있는 사회, 신의가 있는 사회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해야지 하고, 평소 생각해오던대로 사업을 마무리 하고 장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외상거래처와 지불잔액을 메모해서 청산하기 위하여 전국 순회길에 나섰다.
마산, 부산, 대구, 서울로 돌아다니며, 거래처 사장님들을 뵙고, 사업을 그만하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고, 그간 도움을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과, 외상값 잔액을 청산해드렸다. 그랬더니 어떤 사장님들은 “내 장사 20년에 당신같은 사람은 처음 봤소. 장사를 그만두면 외상값은 떼어먹은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찾아와서 외상값을 갚다니 정말 고맙소”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말을 기억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각박하고 야속한 세상, 어떻게든 무슨 이유를 만들어 남의 것을 거저 먹으려는데, 나는 찾아다니며 깨끗이 금전거래를 한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사실 신용사회가 잘 되어있는 곳에서는 생색낼 일도 아니긴 하지만, 나는 나의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갈 때 자기처럼 신용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자화자찬 하고 가져가면 꿩구워먹은 소식이다가, 어쩌다 만나서 외상값 달라면 돈이 거짓말하지 사람이 거짓말 하냐. 나는 좋은 사람인데 돈이 거짓말한 것을 가지고 나를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는 당신이 아주 나쁜 사람이다. 돈의 거짓말에 타박을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서슴없이 하는 언변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을 오래 관찰해 보았다. 남의 것을 거저먹고 왜 부자는 안되는지. 그런 사람 잘된 사람을 별로 못보았다.
“외상값을 잘 갚으라. 그러면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