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진 제주시 이호동 주민센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에서 이미 날카롭게 곤두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세대원 중 한 사람의 인감보호를 요청하셨는데, 반드시 본인이 직접 가까운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신분 확인을 거쳐 인감보호신청을 해야 하는 업무 규정상 할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신분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전화상으로의 신청은 불가능하며, 타인으로부터의 인감보호신청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차 설명 드렸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귀담아 듣지 않으시는 듯 했다.
본인이 아님에도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끝까지 경청했고, 본청의 인감업무 담당자와 상의하여 절충안을 내놓았다. 정식으로 인감보호신청을 받을 수는 없지만 인감보호대상의 인감증명을 타인이 발급받고자 할 때 본인 또는 그의 보호자에게 연락해 동의를 구한 후 발급받을 수 있도록 비고란에 작성을 해드리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할아버지께서는 노여움을 가라앉히셨고, 들어줘서 고맙다며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셨다.
민원인들의 고충을 듣다보면 민원대에 앉은 직원이기 전에 같은 시민으로서 공감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종종 직면한다. 이번 일은 요청하는 대로 해드리고 싶지만 행정절차상 개개인의 편의를 봐줄 수 없는 상황일수록 더 상냥한 자세로 귀 기울여 경청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이자, 친절한 자세로 임했을 때 상대방도 친절하게 답례한다는 것을 배운 호기였다.
저작권자 © 채널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