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기아자전거 총대리점을 할 때는 큰 회사일수록 인정이 있었다. 일선 판매상이 잘 되어야 제조업자인 본사가 잘 된다는 생각으로 협력하였고, 정말 그랬다. 소매상이 회사 물건 팔아 이익이 생겨야 그 물건을 팔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그러면 결국 본사 제품이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본사도 잘 되는 소박한 이치를 상술로 생각하고, 소매상과 제조업자가 밀접한 관계를 가졌었다.
삼천리 자전거를 잘 팔려면 자전거 타이어 도매상을 해야 했었다. 자전거 부품중 소모가 잘되고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부산지점장님께 이 사정을 전화로 말씀드렸더니 부산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부산지점에 가니 지점장님은 나를 전용차에 태우고 부전동에 있는 흥아타이어 공장으로 들어가서 전무님께 나를 소개해주었다. “이 사람은 현금이야. 그러니 물건 줘.”하고 소개했다.
흥아타이어 제품의 대부분을 삼천리자전거와 오토바이에 납품하니 흥아타이어 회사는 기아산업, 삼천리지전거 오토바이에 의하여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 회사 부산지점장님의 소개인데 믿지 않을 수는 없다. 지점장님의 이 한 마디로 대리점 계약, 담보물 제공, 보증인 일체 없이 자전거 사업 끝날 때까지 계속했다.
뿐만아니라 그 외의 군소회사와도 나는 무슨 계약서다 해서 작성해 본 적이 없다. 나의 말은 신용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전거 사업 하는 동안은 모든 거래업체와 대리점을 하면서도 복잡한 서류로 계약서 작성하고 도장을 찍은 적이 없다.
1970년대에는 이렇게 큰 회사도 순박하였었는데 1980년대 후반이 되어 큰 회사를 상대해보니 큰 회사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 흐르지도 않은 1980년대 후반이 되어가자 사회가 삭막하고 인정은 간데없고 큰 회사일수록 횡포가 심해졌다. 왜냐하면 산업사회가 형성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승리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인정도 사정도 없어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큰 회사일수록 대리점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이 없을수록 단순한 판매상을 선호하고, 장사는 돈번다는 인식이 유행하고 있어서다.
큰 회사는 충분한 담보를 받아놓고 마구잡이 제품을 공급하여 결재가 잘 되지 않으면 담보물 처분하고 해약하면서, 그날로 다른 사람과 계약하면 된다. 큰 회사 영업방침이 대개 이랬다. 동업자 문씨는 이 세상이 각박함을 몰랐다. 농촌의 외아들로 재산많은 부자여서 호강만 했으니 재산을 축낼줄은 알지만 늘려본 적이 없어 해태제과 사업을 하면서 보니 사업에 수완과 성의가 부족했다. 노력이 부족하고 계산에 밝지 못하였다. 본사에 재산을 담보하여 적자 나면 망하는데도 망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못 느끼고, 손익에 관계없이 소비를 흥정하게 하려 하였다. 내가 권유한 동업자는 매우 치밀하였다. 우리 둘은 매상을 올리려 밤낮없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잘못 맺은 계약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었다.
큰 회사의 횡포는 가혹하였다. 상도의가 있고 상생의 마음이 있는 기업인가 의심해보지만 소용없다. 고래가 크릴새우를 긁어 삼키듯 하는 것이 그들의 수법이었다. 인기품목에 비인기품목까지 끼워 발송하고 주문도 않은 재고품을 마음대로 보내는가 하면 목표달성을 독촉하며 가공의 판매실적을 올리도록 유도하는 등 갖은 수법으로 대리점의 손해를 가속화시켜 손들면 담보물 처리로 정리하려 든다.
반품약속을 해놓고 반품하면 자기네들 마음대로 수량을 정한다. 그리고 소매상에 마진을 7%로 도매상 마진을 3%로 하도록 책정하고 이 3% 마진으로 차량 구입 운행비와 운전수와 보조원 월급을 감당하고 남는 것을 이익금으로 하도록 하면 내근직원 보수를 주기도 어렵다. 결국 얼마 안가 망하고 손들게 된 구조였다. 이 구조를 개선해보려고 부산지사와 절충해봐도 근무자가 모두 봉급받는 직원이어서 어디서 부수입이나 생길 일 없나 하는데 정신쓰지 지방 대리점이 유지할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물건을 판매하여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아차, 큰일 났다 하고 우리를 끌어들인 문씨 보고 인수할 사람을 물색토록 해서 본사와 계약토록 하고 우리는 얼마간 손해를 감수하고 손을 떼었다. 정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다 못배운다고 한다. 나는 사회경험을 할만큼 해서 웬만한 일에는 속아넘어가거나 잘못 판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함정에 걸려들어 고생하고 손해도 보았다. 그래도 잘한 것은 손익 계산을 해보고 가능성 없다 판단될 때 과감히 정리한 것이다. 그래야 적게 손해보고 남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붙들고 있다가는 재기불능으로 빈털터리가 된다. 님의 이목을 의식말고 용단을 내리고 중단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