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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칼럼](89)학부모 회장도 하고
[현태식칼럼](89)학부모 회장도 하고
  • 영주일보
  • 승인 2016.01.20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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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하루는 셋째 동생 안식이가 찾아왔다. 안식이는 달변가에다 시인이다. 새로 신설한 신제주초등학교 학부모회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회장 맡을 사람을 찾는 일로 내게 왔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회장은 연동 원주민과 새로운 도시가 된 후에 타지에서 온 사람과 조화를 이룰 사람이여야 하니 찾아보자는 논의가 있는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태상지는 연동이고 중앙로에서 사업도 했던 사람이 신제주에 이사와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현태식이라 하는데 자녀도 신제주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회장으로 추대하자.”는 말을 해서 형님댁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몸이 아파 휴양겸 여기와서 조용히 있는데 무슨 책임있는 일을 하느냐 했더니 동생은 “형님이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건강은 학부모회장 정도 한다고 특별히 나빠진다고 볼 수 없으니 나와서 봉사해야 합니다. 형님은 학부모회장 맡으면 경제적 부담이 클 것으로 봐서 사양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일년에 한 50만원 쓰면 되고 그랬다고 재산 축날 것도 아니니 배짱있게 나오십시오”하는 것이다. ‘돈 좀 툭날까 졸장부처럼 한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생각해보자고 대답했다.

다음날 교장선생님이 전화로 학교에 나오시라는 것이다. 자식을 맡긴 학교에 대하여 자연히 공손해지게 마련이다. 가보니 학부모회 이사를 선정하고 나를 회장으로 내정해 놓고 있었다. 사정이야기를 하고 이미 학교 일을 보아온 임시 회장 문대탄씨를 회장으로 하면 나는 뒤에서 돕겠다고 했다. 사실 문대탄씨는 서울 법대 출신에다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 군사정권 시절 동아일보 탄압때 밉보여 제주에 온 사람으로 매사에 열성적이고 활동적이어서 적임자였다.

문대탄씨는 자기가 원래 이 지역 사람이 아니어서 지역민과 새로 들어온 사람을 조화시킬 수 없다. 당신은 여기서 학교도 다니고 형제도 많고 해서 지지해줄 사람이 많지만 나는 아무도 나를 지지할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꼭 회장을 해야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회장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회를 열어보니 생각이 제각각이고, 개성이 다르고 의견통일이 잘 되지 않고, 회의때 토론이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한국청년회의소 제주청년회의소 회원으로 입회하여 회의진행과 사회봉사단체에서의 역할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신설학교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시가 생기려면 교육시설을 먼저 생각하여 학교부지 선정을 우선 해야 될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교육입국을 부르짖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뒷전이다. 교육청이나 행정부나 교육입국을 부르짖는 것은 같으나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신제주에도 많은 인구를 수용할 계획이었지만 학교부지는 빼먹었다. 나중에야 다급히 개인토지를 매수하여 학교를 지으니 개교할 때 겨우 형태만 갖춘 학교지 운동장은 밀감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가 삐죽삐죽 튀어나왔고 운동장은 비만 오면 진흙구덩이가 되고 교실은 페인트도 하지 않고 마루는 칠을 안해서 아이들이 놀다가 발바닥이나 손바닥에 나무거슴이 박혀 상처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갖추어진 것이라곤 책·걸상 칠판밖에 없는 학교니 신제주에 거주하는 대부분 학부모가 자녀를 구제주 다니던 학교에 보내고 전학을 해오지 않았다. 아침에 버스는 구제주 학교로 가는 어린이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이래서는 신제주초등학교가 좋은 학교가 될 수 없다. 좋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이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을 기피하면 지역 발전도 그만큼 늦게 된다.

왜냐하면 학교가 나쁘다는 소문이 나면 젊은 사람이 이사오기를 꺼리고, 그러면 도시는 발전이 늦어진다. 젊은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상가도 살고 활기차게 된다. 그러면 덩달아 지가도 올라가고, 건물임대료도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주민도 잘 살게 된다. 이런 이치를 모르고 학교 발전에 앞장서기를 꺼리는 것은 공공정신의 결여 때문이다. 학교가 좋아야 다방면으로 좋아진다.

돈을 모아 마루바닥에 락카칠을 하기로 하였다. 돈을 모은다 하였더니 제일 먼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학부모가 교육청 직원의 부인이었다. 시기는 전두환 대통령이 12·12 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때여서 무시무시한 사회분위기인데 잡부금을 모으면 안된다고 엄한 지시가 있을 때였다. 잘못하면 중정에 잡혀가거나 군정보기관에 잡혀가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때였다.

특히 문대탄씨는 부회장으로 나를 잘 보좌하여주고 박창일 총무는 부지런하기짝이 없었다. 우리는 잡혀갈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학부형에게 호소하여 돈을 모았다. 교육청 다니는 학부모는 고발한다고 전해왔다. 나는 잘되었다. 이 기회에 말을 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린이 어머니를 만났다.

“당신 남편이 학부형들이 돈 모으면 고발한다고 했다는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요? 돈을 모으면 어느 개인이 착복합니까? 교육청이 학교를 잘 지어서 교육환경을 제대로 조성해야죠. 보시다시피 이게 학교라고 할 수도 없는데 개교해서 어린이를 받는 것은 파렴치한 교육청의 처사가 아닌가요, 교육을 올바로 한다면 교육청 직원이 자기 봉급이라도 털어놓아 학교를 우선 잘 만들어야 하는데, 학교를 지을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가 한 구석에 사유지를 매입하여 급조해놓고도 할 말이 있다니 말이 됩니까. 교육청에서 학교를 제대로 만들면 아이들만 학교보내면 그만이지, 어디 돈 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학부모님 누구를 막론하고 돈 아깝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썩어 주체 못하는 사람 봤나요. 교육청에 가서 정식 항의하겠습니다”고 다그쳤는데 그 후에는 일언반구 딴 말이 없어졌다.

다시 학부형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짐승도 산에 올리면 지켜주는 삯으로 돈을 내고 일년에 몇 번 찾아가서 병이나 나지 않았나, 살이 쪘나, 그렇지 않았나 확인해 보는건데 자기의 분신이고 생명처럼 사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내다보지 않겠다면 부모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환경이 이렇게 열악한데 바닥에 락카 칠하는 돈을 얼마씩 갹출하는데 불평이나 하고 거부하면 자기자식을 자기집의 소나 돼지 만큼도 생각 않는 것이 됩니다. 안그렇습니까?”

했더니 열심이 돈을 모으겠다며 학급책임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왔고 돈을 모아 락카를 직접 사다가 학부형 손수 칠하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칠하는 날은 검사 부인, 판사 부인도 참여하여 하루종일 칠을 하고, 낮에는 수박파티를 하고 손수 만들어온 점심을 모여 앉아 먹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통해 학부모간에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이렇게 협동으로 일을 한 후 어떤 학부모는 마루를 칠한 탓에 쥐가 나서 며칠 고생한 이야기가 제주시 전체로 퍼지면서 학교일을 해서 즐거웠음을 자랑스럽게 선전하니 우리 학교 소문이 좋게 퍼지는 것이다. 학교를 잘 만들어 구제주로 가는 학생이 없도록 하자고 임원들이 더욱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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