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학교가 방학을 하는 것처럼 연말연시가 되면 어린이집도 1~2주간 방학을 하고 쉬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꿀 같은 시간이지만, 취업모의 경우 휴원기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돌봄노동에 대한 평등한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과 장시간노동이라는 근로조건 속에서 엄마가 온전히 감당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얼마나 번다고”라는 말로 엄마들의 발목을 잡았지만, 요즘 세상은 당연히 여성들에게 맞벌이를 요구하면서 “돈도 벌고 아이도 잘 돌보라”고 한다.‘엄마(만)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서서히 겨울방학 휴원기간이 끝나가 다행이다 싶지만, 손 흔들며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들은 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곧 보육료를 납입해야 할 날이 다가오는데, 누리과정예산 지원이 사라지면 그 부담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린이집이 문이라도 닫는다고 하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와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미룬 채 누리과정예산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없고, 아이들을 둔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누리과정은 국가가 만 3~5세의 취학 이전의 아동들을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과 유치원 교육과정을 통합해 공통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정책으로, 2012년 5세 누리과정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3~4세까지 확대 시행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편성 갈등은 새로운 사안이 아니어서, 2014년 이후 연말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심의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은 결국 예산 편성 주체가 누구냐, 그리고 어린이집이 보육기관이냐 교육기관이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교육감들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보육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중앙정부, 시도교육청, 지방의회 등의 입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봐야 한다. 그게 보육이든 교육이든, 공보육과 공교육은 공히 사회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의 누리과정 예산편성 갈등은 어디에서 예산을 감당할 것이냐의 밀고당기기가 아니라 소요재원 조달이 핵심이다. 거슬러 올라가 2012년 누리과정을 시작할 당시 중앙정부는 책임지고 교육재정교부금 증액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지방재방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책임을 전가하는 꼼수를 부렸다. 누리과정예산은 중앙정부가 확보해야 하는게 우선이다.
일이 가면, 일을 할 수 있는 돈도 함께 가야 하는게 당연하다. 알고보면 중앙정부가 사무를 위임하면서 일만 떠맡기고 소요예산은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로 인해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사무와 재정 분담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누리과정 예산편성과 교육재정보조금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재정 불균형 해소 자체가 시급한 과제이다.
특히 납득할 수 없는 점은 왜 누리과정예산에 관한 갈등을‘중앙정부-시도교육청’혹은‘시도교육청-지방의회’간의 갈등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 예산안 심의하면서 국회는 뭐했나. 또한 여당이 무책임한 동안 원내 야당은 무엇을 했나? “낳기만 하면 국가가 책임진다”고 말했던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모두의 공약이었다. 다시금 정치의 부재를 실감한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출산대책에 110조원이라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청년들에게 결혼해라, 아이 낳아라 하며 엉뚱한 저출산 대책에 돈을 쏟아 부을 일이 아니라, 국가가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가지고 서로 떠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느 누가 ‘국가가 책임진다’는 말을 믿고 아이 낳을 생각을 하겠나?
2016년 1월 12일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