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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칼럼](87)가구상 영업의 허와 실
[현태식칼럼](87)가구상 영업의 허와 실
  • 영주일보
  • 승인 2016.01.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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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철근장사를 치우고 신제주에 3층건물을 짓고나니 또 한가하였다. 나는 병세가 약간 호전되어 콘디션이 좋아지면 누웠다가도 막 밖으로 나다녀야 직성이 풀렸다. 너무나 어려울 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던 것이 습관이 되어 아픈 증상만 약간 누그러들면 괜히 불안해진다. ‘이렇게 놀면 안되는데 무엇이든 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며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데도 헤매어야 했다. 이번에는 중앙로에 임대했던 집을 찾고 가구상을 하기로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고 철근상처럼 무겁지 않고 노천에 쌓아두고, 불량업자가 판치는 건설업과 상관없으며, 집안에 진열하고 내 마음에 안맞으면 안팔면 되니 상당히 좋을 것 같았다. 가구점이 잘된다고 소문이 난 시기였다. 그리고 남의 가구점을 보면 화려하기도 했다. 사장도 멋지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익도 많아 돈벌이 좋다는 평이다. 그럴 때 마침 처가로 먼 친척이 서울 돈암동에서 가구공장을 하는데 제주에 내려왔었다. 자문을 구하니 장래성 있고 마진도 괜찮고, 상품 구입은 자기네 공장에서 공급하고, 생산 못하는 것은 전부 구매해서 발송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결심하고 시작했다. 시작하고 보니 이것 또한 사기나 협잡을 하지 않으면 못할 사업이었다. 가구는 단가가 높으니 외상을 주어야 하고, 외상 주면 수금을 못한다. 구입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주문품을 한달이 되어도 발송을 안해준다. 생산 공장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화려하게 선전하는 가구 공장을 가보면 허름한 창고나 천막집에서 간단한 기계를 놓고 종업원 한두 명 뿐이다.

가구를 만드는 것을 보면 더욱 기가 찼다. 나무재료는 나무공장에서 나무의 속심인 하품을 쓰고 앞면만 번지르르하게 만든다. 우리 상식으로는 돈줄 것 같지 않다. 의자는 가관이다. 푹신하게 보이지만 속에는 지푸라기, 썩은 솜, 연탄재도 막 처넣는 것이 아닌가. 밖으로는 천으로 곱게 싸니 그럴듯 하지만 약간만 헐면 쓰레기가 쏟아지게 되어 있다. 지금은 그때와 시대가 너무 다르니 그렇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때 즉 1980년대에는 그랬다. 천만원 하는 자개장은 햇볕에 내어 놓고 보이는 일이 없다. 넓은 매장 건물에 전깃불을 희미하게 켜고 손님을 받는다. 그 고급품 전면이 햇볕에 내어놓으면 평면이 아니라는 것이 탄로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이런 엉터리 물건들을 상품으로 내어놓고 엄청난 고가의 가격표를 붙인다. 고가로 붙이지 않으면 가짜로 보이고 고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인들의 허영심을 상술로 쓴다. 비싸야 좋고 비싸야 남에게 자랑하고 고가라고 하면서 뽐내는 그 허영심을 이용하여 값을 세 배 네 배 비싸게 붙여 놓으면 굉장한 고급으로 속아 얼른 사간다. 그러면 파는 사람은 잘 속여져서 기분좋다고 하고, 돈벌었다고 하며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상술을 써먹지 못했다.

너무나 양심에 가책을 받기 때문이다. 사실 알고보면 장사꾼이 못되어서다. 이런 때일수록 자전거는 속이지 않아도 되고, 오래 놔둬도 일 없고, 오래 기반을 닦아 놓으니, 언제 어디에 가면 이런 물품을 소비할 수 있는지를 훤하게 손바닥 보듯 그 방면에 밝으니, 자전거 장사에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차는 떠났다. 다시 거기에 연연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번에는 날나리 공장제품은 구입하지 않고 이름있는 메이커 대리점을 하였다. ‘동일가구’였다. 이 제품은 원가가 높고 마진이 없어 장사를 하면 할수록 어려움에 처하나 제품을 팔고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은 없는 대신 판로가 없다. 고객의 선호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만이 어려움이 아니었다. 운송이 또 문제였다.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나라인지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이 사람인지, 모두가 도둑놈이고, 모두가 사기꾼이고, 모두가 협잡꾼이라면 나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니 그런 표현은 하지 않겠다. 화물운송업을 하는 선박업자는 자기가 이익될대로 계산한다. 무거운 물건은 무게로, 가볍고 부피가 있는 물건은 크기로 운임을 받는다. 그리고 운임을 받기로 하고 화물을 받으면 우리 상식으로는 그 물건을 원상으로 약속한 장소까지 가져다 주고 운임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화물업자는 그 물건이 부서지든 없어지든 그것은 알바 아니고 너가 화물을 맡겼으니 운임은 꼭 내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법이요 원칙인 것 같다.

한번은 물건이 물에 잠기고 포장이 찢어져 개수가 많이 모자랐다. 그래도 없어진 물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운임을 내지 않으면 화물을 유치하고 내어주지 않고, 다음에 당신 화물은 받지도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사업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 억지를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에 법이나 약관이 있다면 그건 강자가 필요할 때만 존재한다. 약자에게는 책 속의 글자에 불과하다. 물건도 제대로 인수받지 못하고, 운임은 한 푼도 깎지 않고 정확히 지불했다. 하역회사도 똑같다. 가구는 흠집이 생기면 상품가치가 전연 없게 된다. 그런데 의자를 하역하면서 시멘트 바닥 위를 끌면서 하역하니 의자의 모서리가 모두 닳아서 터지고 말았다. 상품이 폐품이 된 것이다. 이를 항의하며 운임을 못물겠다 하고 우선 못쓰게 만든 것을 변상하라 하였더니, 그 회사의 주무책임자가 내 초등학교 동창이었는데 나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면서 상품가치를 망가뜨린 책임을 추궁하였다고 부두에 소문을 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져도 하소연 할 곳 없는게 우리나라 하역업체 풍토인 듯하다. 성한 상품까지 압류해놓고 운임을 전부 지불하고, 물건 인수해다 못쓰게 된 것은 폐기처분하고 이상이 없는 것은 판매하였다.

하역 노조는 더 가관이다. 배가 항구에 닿으면 화주가 기다리다 노조원 반장이든 책임자에게 하역비 외에 뇌물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백만원 짜리 옷장이라도 갈쿠리로 찍어서 하역한다. 그러니 성한 것이 없다. 찍은 것을 항의하면 하역 못하겠다고 손도 안대고 화주 자신이 하역도 못하게 막는다. 이것이 당시의 현실이다. 이래서 나라가 발전하고 사람 사이에 신의가 있고 계약이 지켜지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서로 신의가 있고, 정의가 인정되고 그런 사회를 갈망한다. 어쨌든 가구상도 오래 하지 않고 치웠다. 손을 떼면서 내 생각에 ‘이런 물건을 팔면 양심상 부끄러운 일이다’ 하는 가구 500여만원 어치를 과수원 창고에 넣고 필요한 사람에게 거저주다가 나머지는 폐기 처분하고, 양심에 부끄러움을 없앴다. 내 돈이 손해나야지, 양심에 상처를 받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인생을 한두 해에 끝내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이 아닌 자식과 아내와 함께 사는데 누가 보든 안보든 바른 행동을 해야 그 영향이 자식에게 미쳐 자식도 옳게 바르게 자라서 사회생활도 잘 할 것이라 믿었다. 가정교육에 특히 아버지가 귀감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일도 다 1980년대 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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