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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칼럼](84)새 사업
[현태식칼럼](84)새 사업
  • 영주일보
  • 승인 2015.12.24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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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과수원에서 일을 해보았다. 참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딴판이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격언이 맞는 모양이다. 사람만 상대하며 살아온 내가 사람 만나 교언영색으로 비위맞추는 일에 질려 어떻게 하면 이 지경에서 벗어날까 여러 번 생각하였었다.

나무그늘에서 유유히 청정한 공기 호흡하며 쉬기도 하고, 일도 하고, 그 누구의 간섭도 잔소리도 듣지 않고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렇게 꿈꾸었었는데, 막상 나무 밑에서 허리 구부려 삽질을 하고 30도 넘는 더위에 농약을 쳐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과수원 관리자는 만나기만 하면 특별대우를 바란다. 과수나무는 시비를 제때 하고, 전정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 농약도 때맞춰 뿌려야 하는 기술업이나 마찬가지인데 생판인 나를 관리인이 우습게 보는 것이다. 농약도 지켜서지 않으면 약봉지가 도망가고, 전정은 엉터리로 한다. 일마다 지켜보고 관리인을 상전으로 대우하며 부수입을 시켜줘야 하였다.

허리병이 심한 나는 나무 밑에서 구부려 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부대낄 때는 어느새 날이 저무는지 몰랐다. 농약을 치는 날은 더 죽을 지경이다. 기관지가 나쁘고 심장이 좋지 않으니 농약이 기관지로 들어가면 기침가래가 심하고 호흡이 가빠져서 어쩔줄 몰랐다. ‘이거 살려가다 제라하게 죽을 코에 온 것’ 아닌가. 그래서 어느 기회에 철근장사를 하게 되었다.

이 사업도 정말 어려웠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종업원을 두어서 철근을 저울로 저울여 파는 것이니, 힘도 안 들고 시간도 여유가 있고 몸이 아픈 사람도 괜찮다고 해서 손을 댔더니, 이것처럼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없었다.

철근은 제 중량을 주면 톤당 3천원 남는다. 이것으로 세금 내고 종업원 봉급 주고 잡비 쓰면 적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이 사업을 오래 하고 돈도 벌었다는데 알고도 모를 일이다. 이 정도면 약과다. 철근을 저울질 할 때는 몇 톤 몇 십 톤 떠야 하는데 바빠서 내가 거드는 날에는 심장 나쁜 나는 한 톤 뜨고 숨이 막히고 쓰러질 지경이다. 자전거는 무게나 덜 나가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었는데 이건 정말 힘에 부쳤다. 아내가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말고는 더욱 힘들고 이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더욱이나 부두에 철근이 들어오게 되면 하역을 해야 하는데, 철근은 특수차량이 아니면 운반하지 못한다. 대형화물차라야 하는데 이 차를 임차하여 약속시간에 부두에 대고 화물선에서 무거운 철근을 기중기로 들어올려 차에 내려놓으려 할 순간에 차를 빼어버린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잘 사는지 못 사는지 통계를 내어보지는 않았지만 양심에 털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통사정 해도 차주인도 아닌 고용운전수가 막무가내로 차를 빼고 가버린다. 아마 주인과 계약한 금액 외에 운전수에게 별도 뇌물을 쓰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손해보는 장사에 그렇게 할 수는 없고 갈등이 심했다.

부두에 그냥 쌓아놓으면 부두사용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했고, 다른 차량을 구해다 실어오면 상차비가 수월치 않게 들었다. 정직한 장사만 하였던 나는 상상도 못했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다가 건축회사에 납품한 것이 부도 나면 그만이다. 사업선택을 잘못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철근 값이 하루가 다르게 인상되었다. 물량을 좀 확보한 것이 값이 인상되어 이익을 보아서 자본금 손실이 보전되었다. 기회다 싶어서 정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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