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초 황희 정승의 경우 고려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가 30세 되던 해에 이성계의 역성혁명이 일어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고 72현과 함께 두문동으로 들어 갔던 황희는 “젊은 자네는 나가서 불쌍한 백성을 위해 일하라”는 선배들의 간곡한 권유로 두문동을 나와 새로운 정권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태종이 등극후 공조,병조,예조,이조판서등 18년을 지금의 장관직위에 있었고, 다시 세종과 함께 27년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18년이나 하면서 “경제육전” “국조오례”등을 편찬하여 법률과 제도을 정비하고 내치에 힘써 태평성세를 이룩했다고 합니다
세종31년, 87세 되던 해에 60여년간의 관직을 마치고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 3년후 90세로 한양의 석정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세종의 문병을 왔는데, 재상을 20년 넘게 지낸 90노인이 멍석 위에 누워 있는 보습을 본 왕이 깜짝놀라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자 그는 태연하게 “ 늙은사람 등 긁는 데는 멍석 자리가 십상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요즘 댓가성 있는 부정한 돈을 받고도 떡값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새겨 들어야 할 일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선 후기 다신 정약용 선생은 “ 옛날부터 무른 지혜가 깊은 선비는 청렴으로써 교훈을 삼고 탐욕을 경계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과거에도 공직자로서의 기본 윤리관으로 청렴을 요구했듯이 현재는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직자는 자기 지역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시민에게 낮은 자세로 임하고, 묵묵히 봉사하면서 섬기는 자임을 명심하고 일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거 잘못된 관행이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쇄신해야 함은 물론이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는 전국 최고의 전문가란 자긍심을 갖도록 부단한 연찬을 하여 공명정대한 업무 집행을 하여야 하고 내부의 잘못을 바로 잡고 부적절한 공직자를 골라내 퇴출시켜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은 사회, 정말 청렴하고 굳은 일을 마다않고 시민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자리에서도 성실히 일하는 그런 공직자가 우대 받은 공정한 풍토가 조성될 때 소신있는 행정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