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군대 입대하고 제대한 후 병마에 시달리고 경제적 어려움에 어쩔줄 몰라 할 때 할아버지는 내 아내보고 “참고 살라. 손자며느리 중 네가 제일 양반집 애기다”하시면서 위로해주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나보고는 “너는 동북방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못간다. 삼살방이라”하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용담동 먹돌새기에 살고 점포는 북초등하교 앞이니 영락없는 동북방이었다. 이제 피나는 노력을 해서 점포를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운명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자식 셋과 처, 그리고 나 하면 다섯 식구가 대주(현태식)가 죽어서도 못간다는 삼살방으로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기로에 선 것이다.
점포도 기존의 점포장소에서 바로 앞건물로 옮겼다. 방 둘이 있는 점포 집을 세내어 이사하고 분위기를 바꾸었다. 온 식구가 같이 협력하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 부인에게 점포를 맡겨야 나는 바깥일을 할 수 있다. 먹돌새기 집에서 부인이 경영하던 구멍가게를 정리하고 이사를 했다. 삼살방에 간다고 말리는 분도 있었으나, 나는 가다 죽으면 만사해결이니 가겠다고 완강한 고집을 세워 이사를 하였다. 방 하나는 창고로 쓰고 방 하나에 다섯식구가 생활하였다. 옷장 놓고 그 옆에 물건 쌓아놓고, 다섯식구가 누우면 돌아눕기도 불편하였다. 여름밤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도 여기서 4년을 지냈다. 그동안 식구에 탈이 나거나 내가 건강은 안했지만 더 악화되어 자리지켜 오래 눕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체 긴장하여 그랬던 것일까. 저승사자도 너무 황당한 짓을 하니 외면하고 말았을 것이다.
죽으러 삼살방에 가도 죽지 않았다고 무슨 무용담처럼 말했더니 큰 하천(漢川)을 넘었으니 괜찮은 것이라고 죽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는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