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좋은 말도 세 번 들으면 지겹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오늘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를 70여 차례 이상 들먹였다. 김무성 대표의 연설이 계속될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기는 했다. 김 대표와 새누리당이야말로 시급한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김무성 대표가 말한 ‘개혁’의 목표는 ‘국민소득 3만불’이다. 아마 3만불 달성의 그날이 오면 곧바로 ‘4만불 타령’을 시작할 것이다. 반면 김 대표의 연설 어디에서도 한국의 낮은 식량자급률 · 세계1위의 원전밀집도· 낮은 성평등 수준 · 높은 자살률과 각종 사고율 · 긴 노동시간에 대한 성찰과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경제성장이 얼마나 되든 그것은 한국사회의 질적인 개선과는 괴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장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고, 개발이 많이 이뤄진 국가가 개발도상국마냥 성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근래의 저성장은 단순한 경기 침체의 산물이 아니라, 과잉생산 · 과잉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회로 전환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김 대표가 이런 이치를 새기는 것은 벅찬 일임을 안다. 다만 국민들이 김 대표의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3만불 타령을 듣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김무성 대표가 가장 무게를 실은 대목은 ‘노동개혁’이었다. 하지만 10%의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 했을 뿐, 90%의 고통을 해소하는 대책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거나 비정규직 차별을 강력히 시정하자는 제안은 없다. 얼마 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 조 모씨가 전동차에 끼어 세상을 떠났는데, 김 대표는 이런 사고의 핵심 원인인 ‘외주화’, ‘간접고용’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명색이 집권여당의 대표인 정치인이 노동 문제를 말한다면서 ‘사용자 책임’을 쏙 빼놓고 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조직률이 겨우 10%에 불과한 노조한테 이리저리 밀려왔다는 것인가?
김무성 대표는 “많은 나라들이 개혁의 성공과 실패 여부에 따라, 국민의 운명이 1등 국민으로 올라서거나 3등 국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멀리갈 것 없다. 같은 나라의 국민이라도 1등과 3등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1등에서 3등으로 추락하는 봉변을 당한다. 김 대표는 젊은 장병들을 높이 사며 ‘국민영웅’이라고 칭했다. 그래봤자다. 제대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파업에 참여하면 김 대표 같은 위정자들에게 졸지에 ‘3만불 시대의 적’으로 찍힐 거 아닌가.
오늘 김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국민 공천제’라고 불렀다. 국민은 선거의 주체지 공천의 주체가 아니다. 동원가능한 사람들이 주로 참여해서 현역 의원에 유리하게 이뤄질 경선이 무슨 ‘국민공천제’씩이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이 공천한다? 오늘 연설 내용을 보니 김무성 대표가 1등 국민을 공천하고 3등 국민을 낙천시킬 태세다.
김무성 대표 연설의 맺음말은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가야할 ‘새로운 길’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였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앞서 ‘선국후당(先國後黨)’을 운운했다. 그렇다. 새누리당은 나라와 국민을 늘 앞세워 희생시켰고, 자신들은 뒷전에서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그리할 모양이다. 김무성 대표는 오늘 연설로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에 이은 국민 몰이꾼임을 자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