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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21)대통령께 하소연이나 해볼까
[현태식 칼럼](21)대통령께 하소연이나 해볼까
  • 영주일보
  • 승인 2015.05.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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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이렇게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데 처지가 어려워 공부할 수 없으니 이런 세상이 있을 수 있나. 대통령께 하소연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경무대 앞까지 가기는 했으나 정문에 경비를 서는 순경의 위압에 기가 꺾여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오다 보니 한국일보사가 보여서 거기에 가서 고학생이니 급사로라도 써달라고 할까 기웃거리다 용기가 없어 그대로 돌아왔다.

나는 서울대학만 가야 출세하고 높은 사람되고 으스대고 부와 명예와 권력이 함께 다 굴러오는 것인줄 믿었다. 학비를 댈 형편이면 다른 대학은 들어가고도 남겠지만 해결이 안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설사 학비 대어줄 사람이 있다 해도 딴 대학은 안가고 서울대만 지원했을 것이다. 서울대에 합격하면 학비, 생활비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으니 나는 참으로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또 한 가지 목적한 일은 마음 뿐이고 맹렬하게 대쉬(돌격)못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 특대생하려면 선생님께 밉보이지 않기 위하여 숨죽여 지냈기에 용기나 객기부리는 것을 하지못한 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생활이 힘겹고 추워도 돈이 없으니 연탄은 그림의 떡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거의 연탄을 하루에 두어 장씩이라도 사다 때지만 나는 매일 돈벌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며칠치 식량만 있으면 공부만 하고 있으니 궁하기 짝이 없어 연탄 사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땔감으로 써야 했다. 정릉은 북악산 북쪽에 위치해서 경무대(나중에 청와대로 명칭이 바뀜)에 가깝다. 내가 사는 산등성이를 넘으면 삼양동이 펼쳐지는데 거기에는 피난민 천막들이 산자락을 덮고 있었다. 낮에 보면 바람에 날리는 찢어진 천막 자락이 춤을 추는 무녀의 치맛자락 같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도 나처럼 가난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밤 12시를 넘어 나무하러 산으로 올라가다 보면 몇 백 미터씩 끝도 없이 열지어 내려오는 군상이 보인다. 어두운 밤에 길 옆으로 비켜서 보노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무를 지고 머리에 이고 정말 남부여대여 줄지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차려 입은 행색은 거지임에 틀림 없고 먹지 못해 비쩍 말랐는데 그 중에 만삭이 되어 배가 남산 만한 아주머니도 머리에 땔감을 이고 그 어두운 밤길을 내려 삼양동 쪽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왠지 내 가슴이 저려왔다. 정말 삶이 그렇게 고귀하여 저런 고행도 감수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혼자만 깊은 사색의 심연으로 빠져 보지만 아둔한 나는 갈수록 미궁으로만 헤매어 갔다.

산은 날이 갈수록 벌거숭이가 되어갔다. 산림보호를 위하여 정릉 파출소, 영림서(산림과) 직원들이 있었지만 4·19 때라 군인이 주로 나와서 감시를 하였다. 통나무를 해 오다 붙잡히면 철창신세가 된다. 잡혀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안 다니는 깊은 밤에 지게를 지고 톱 들고 땔감하러 산으로 가는 것이다. 고요한 밤에 달빛이라도 교교할라 치면 펼쳐지는 광경이 볼 만하고 시심(詩心)이 있다면 당장 한 구절 나올 듯, 나 외에 방해받는 것이라곤 없다. 왜 콧노래, 시 한수가 없고 가슴이 답답하고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인지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길을 잃고 산을 향해 가다가 한참 너무 올라와버렸다고 생각되어 조금 내려와서 나무 하나를 골라 톱질을 시작한다.

적막을 깨며 퍼져가는 톱질소리가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저 아래쪽에서 도깨비불인지 모르지만 번쩍번쩍하는 것이 보인다. 톱질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더니 꼭 사람이 손전등을 비추며 쫓아오는 것 같았다. 한밤중이지만 산림 감시를 하다 나무 자르는 소리를 듣고 잡으러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겁이 나고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지게를 지고 도망갔다. 한참 도망가니 불빛도 사라지고 인기척도 없어졌다. 어슬렁거리며 가노라니 이번엔 습지에 들어섰다. 조금 가다보니 시커먼 것이 나타났다. 막다르면 쥐도 고양이에게 이빨을 내민다고 하던가. 나는 겁을 내도 그렇고 뛰어도 그러했다. 무서운 귀신이라도 덤벼라 하면서 오기를 부리며 천천히 다가가 보니 엊그제 만든 무덤이었다. 그 주위에는 장사를 치르며 버린 쓰레기들이 널려 있고 가마니와 거적떼기, 막대기가 나뒹굴었다. 정말 모골이 송연하다고나 할까.

나는 짐짓 침착한 체, 스스로 담대한 체하며 귀신이 있으면 나오라 하며 마음을 다그치며 그 묘소 주위를 두어 바퀴 돌아서는 침을 탁 뱉고 또 산으로 향했다. 한참 산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 하나를 베어 넘어뜨렸다. 나무가 넘어지며 밤공기를 흔들어대는 소리가 소름 끼친다. 산신에게 절명의 고통을 절규로 호소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작은 나무들은 꺾이고 짓눌리며 쓰러질 때 메아리가 슬픈 장송곡처럼 들려온다. 그 소리 때문에 겁에 질려 뛸 수도 없다. 그러면 점점 더 무서워져 아마 기절하고 말았을 거다. 나무를 토막내어 지게에 올려 놓고 한 짐 지어 내려온다. 시계도 없으니 시간은 짐작으로만 알 뿐.

통나무로 그냥 두면 아침에 재수없게 경찰관이나 영림서 직원, 군인에게 들키면 잡혀감으로 잠을 자지 않고 밝기 전에 장작으로 쪼개놓아야 한다. 나무를 쪼개어 장작으로 만들어 쌓아 놓으니 새벽 기운이 돌았다.

아침에 옆집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야! 이거 큰일 날 놈 아니냐? 너 그 산 중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호랑이 밥이 되는데 왜 그런 엉뚱한 짓을 하는거야!” 하며 걱정들을 해준다.

밤에 짐승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났지만 옆집 사람이 그 소리가 늑대 소리인 것을 알려줘서 알았다. 이 마을 들은 이후로는 깊은 산 속으로는 겁나서 가지 못하고 머지 않은 곳에서 땔감을 구했지만 숲이 헐벗는 속도가 빨라져서 가까운 곳에서 땔감 얻기가 어려워진 후로는 공사판에서 쪼가를 나무를 구해다 때기 시작했다.

집을 다 지으니 성남이가 와 보고 같이 지내자고 제의했다. 그러자고 했다. 나는 지게 지고 땔감하러 가자고 권해서 마침 달 뜨는 날 밤에 같이 나섰다. 한참 산으로 가는데 자기는 도저히 못가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만도 다녔는데 둘이 같이 가는 것이야 길동무 겸 좋지 않으냐고 해도 거절하고 그는 자기 혼자만 내려와버렸다.

나 혼자 땔감하고 와 보았더니 그 친구는 가고 없었다. 10여년 전에 제주도에서 한 번 만난 것이 고작이지만 옛 친구는 미운정 고운정은 있으니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요즈음은 간간히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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