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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16)뺑뺑이 노름에 속고
[현태식 칼럼](16)뺑뺑이 노름에 속고
  • 영주일보
  • 승인 2015.05.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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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하루는 형님께 3천환을 받고 일찍이 봉개마을로 향했다. 시에서 이 마을까지 거리는 아마 10㎞ 정도 되는 거리였다. 사라봉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모시옷을 곱게 입은 한 노인과 그 옆에 젊은 여자가 앉아있고 보통 차림을 한 남자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뺑뺑이 노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뺑뺑이 노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옆을 막 지나치려는데, 그 하얀 옷차림의 남자가 부르는 것이다. 좀 구경만 해보라는 것이었다. 심란해 마음도 몸도  둘 곳 없던 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그 옆에 가서 잠시 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앉아서 보라고 몇 차례 권하기에 앉아서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았다. 하얀 접시에 창호지를 잘게 오려서 그것을 손끝으로 돌돌 말아 팥알만큼 만든 것을 여나문 개 놓고, 창호지 오린 것에 빨간 점을 하나 딱 찍고, 이것을 돌돌 말아 크기가 팥알만큼 되도록 해서 접시 가운데 넣고 살짝 섞은 후, 그 점 있는 것을 집으면 걸어놓은 돈의 두 배를 주고 못집으면 돈을 잃고 마는 놀음이다.

옆에 앉은 남자는 집어내었다 못집어냈다 하며 여러번 반복하면서 나더러도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돈을 걸지 않고 장난삼아 맞춰보라고 자꾸 권유하는 바람에 돈을 걸지 않고 집어봤다. 백발백중 집어냈다. 참 쉬웠다. 족집게 같이 집어낼 수 있었다. 자신이 생기니 돈 욕심이 발동했다. 주머니 속에 있던 돈 백환을 걸고 해보니 실패였다. 빨간 점 있는 알맹이를 못 찾은 것이다. 손해 본 것을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했다. 또 실패였다. 그러길 몇 차례 하고 나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들에게 걸려든 것이다. 주머니의 돈을 다 털리면 나는 한 달을 굶으며 지내야 한다. 안돼지, 손 털어야지 하고 계산해 보니 일천이백환이 날아갔다.

이제 열흘 이상 굶고 살아야 하게 됐다. 땅이 꺼지는 것 같고 눈 앞이 캄캄했다.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나, 머리를 쥐어뜯어 봐도 쏟아진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잃어버린 돈이 돌아올 리 없었다. 봉개로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얀 옷 입은 신선같이 생긴 사람은 사기꾼이요,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바람잡이였다.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은 나는 그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고 게임도 정직하게 하는 것으로 알았다. 너무나 세상 물정을 몰랐고 순진하고 어리석기만 했다. 그렇다.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고 책만 읽던 내가 세상사를 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고생을 했다고는 하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일만 하고 지내왔으니 사람들의 간교함과 사악함을 어떻게 깨달았겠는가. 나같은 불쌍한 사람의 것도 가볍게 빼앗아가버리는 심장에 털이 난 사람들이 곳곳마다 있음을 알게 된 첫 번째 경험이었다. 가는 길에서 수도 없이 뇌까렸다.

“멍청이, 공돈 욕심 낸 이 나쁜 놈, 잘 당했다. 돈 뺏겨 싸다 넌 굶어죽어야 돼. 무슨 재주가 있고 눈치가 있다고 남의 걸 먹으려고 덤벼!”

연습으로 시킬 때는 점찍은 것을 집어내기 쉽게 섞는다. 돈을 걸고 덤비면 표시있는 알맹이를 휘휘 여러번 저어버리니 찾기가 어려울 건 뻔한 이치다. 그리고 욕심을 내고 덤비면 눈은 충혈되고 심장의 고동은 커지고, 맥박은 빨라져서 평상심을 잃고 흥분하게 되니, 점있는 알맹이의 행방을 정확히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아뿔싸,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할 수 없다. 거짓말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고, 남에게 비굴하게 손 내미는 것도 못하고 누구에게 알랑거리며 아부하는 재주도 없으니 굶어야지. 각오를 단단히 했다.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하루 두 끼로 줄이고 한 달을 지냈다. 그리고 깊이 깨달았다. 공짜에 눈독 들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보다 어리석지 않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도박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이 교훈을 잊지 말자. 비싼 댓가를 치르고 배운 것을 헛되이 하면 안된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화투, 복권, 공짜가 생긴다는 곳에 빠져본 바가 한번도 없다. 아니, 그 비슷한 사건이 딱 한번 있었는데 선물로 받은 귀한 시계를 잃어버렸던 어리석은 경험이 있기는 하다. 차후에 이 사건(?)도 다시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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