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스카밴드 사우스카니발 “뭍사람들아, 우리 앞에서 ‘와리지 말앙!’”
제주출신 스카밴드 사우스카니발 “뭍사람들아, 우리 앞에서 ‘와리지 말앙!’”
  • 이재원
  • 승인 2013.09.1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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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르라 조들지마랑! 도르라 몬딱도르라!(달리자 걱정하지 말고! 달리자 함께 달리자!)”

지난 10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클럽 타(打)에서 여타 공연장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다.
좁은 무대 위엔 트럼펫ㆍ색소폰ㆍ트럼본 주자 등 무려 9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올라 국내에선 생소한 스카(Skaㆍ자메이카에서 유래된 관악기 중심의 음악)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래의 제목과 가사는 음악보다 더 생소한 제주도 방언이었다. 무대의 주인공은 제주도 출신 스카밴드 사우스카니발로 이날 무대는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 ‘사우스카니발’ 발매를 기념한 쇼케이스 자리였다.
낯선 것과 낯선 것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정취는 이국적이고도 신명났다. 섬사람들의 흥에 감응한 뭍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무대 앞으로 몰려와 몸을 흔들었다. 뒤 이어 섬사람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뭍사람들과 뒤섞였다. 클럽 안은 열기로 가득 찼다.

영국에선 리버풀 사운드, 일본에선 시부야케이 등 이른바 로컬 신(지역 음악)이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로컬 신은 씨가 마른 상황이다.
한때 부산과 인천이 헤비메탈, 청주가 하드코어 음악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았지만 그 세가 많이 미약해졌다. 뮤지션들의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극심한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 속에서 사우스카니발은 과감히 로컬 신을 지키며 지역색을 강조하는 승부수를 띄워 주목을 받고 있다.
쇼케이스를 앞둔 지난 9일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사우스카니발의 멤버 강경환(보컬ㆍ트럼펫), 강태형(기타), 고경현(퍼커션), 고수진(베이스), 이용문(테너색소폰), 신유균(알토색소폰), 김건후(트롬본), 석지완(드럼), 이혜미(건반)를 만나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경환은 “뭍사람들이 제주도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섬으로만 인식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제주도가 그 어느 지역보다도 역동적인 곳임을 알리고, 제주만의 문화와 일상을 있는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해보자는 취지로 앨범을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앨범엔 타이틀곡 ‘몬딱도르라’를 비롯해 ‘노꼬메 오름’ㆍ‘수눌음 요’ㆍ‘와리지말앙’ㆍ‘바당이 나꺼여’ㆍ‘혼저옵서예’ㆍ‘고라봐야’ㆍ‘느영나영’ 등 10곡이 실려 있다.
상당수의 수록곡들이 제주도 토박이가 아니면 알아듣기 힘든 제목과 가사들로 이뤄져있다.
‘몬딱도르라’는 ‘모두 함께 달리자’, ‘수눌음’은 ‘품앗이’, ‘와리지말앙’은 ‘나대지 말라’, ‘바당이 나꺼여’는 ‘바다는 나의 것’, ‘느영나영’은 ‘너랑나랑’이란 의미를 가진 제주도 방언이다.
가사 또한 소박하기 그지없어, 너무 욕심 내지 말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사이좋게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유기농 감귤 같은 음악이다.
그러나 제목과 가사를 독해하는 일은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번역에 가까울 정도다.
 이는 우리 고유의 문화가 점점 힘을 잃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주도 방언은 유네스코 지정 ‘소멸 위기 언어’이기도 하다

강경환은 “우리 역시 처음엔 제주도 방언을 잘 몰랐고 또 촌스럽게 여겨 표준어로 가사를 썼는데 결과물이 어색했다”며 “제주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엔 제주도 방언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후 방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불과 20여 년 전까지도 도태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사들이 표준말을 쓰지 않은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을 정도로 제주도 방언 말살이 심각했다”며 “다행스럽게도 최근 도(道) 차원에서 제주도 방언 살리기 운동이 이뤄지고 있고, 선생들에게도 방언을 적극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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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사우스카니발의 인기는 단순한 인디 밴드 이상이다.
특히 올 상반기에 사우스카니발이 뭍으로 나가 쟁쟁한 실력파 밴드들을 제치고 EBS 신인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 ‘헬로루키’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신인 뮤지션 집중 육성 프로젝트 ‘K-루키즈’에 선정되자, 이들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또한 이들은 제주도에 연고를 둔 밴드 최초로 대형 록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제주도 방언 살리기 공익 광고 모델 발탁에 이어 뮤직비디오도 유치원교재로 쓰이게 됐다.
 지역 지상파 뉴스 채널도 이들의 앨범 발표를 주요 뉴스로 전할 정도로 지역민들의 사랑이 각별하다.

강경환은 “제주도엔 아직도 서울보다 수준이 낮다는 일종의 패배의식이 적잖이 남아있는데, 우리는 그런 부분을 상당 부분 깼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젠 제주도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란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제주도엔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낼 만한 기획자가 없어 묻히고 있다”며 “역량 있는 기획자들이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다면 제주도가 대중음악을 선도하는 미래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스카니발은 자신들의 롤모델로 반세기 넘게 활동 중인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밴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을 꼽으며 소박하지만 단단한 미래를 다짐했다.
사우스카니발은 “우린 평생을 함께 할 각오로 음악을 하고 있고, 이번 앨범은 그 시작”이라며 “앞으로 제주도를 끝까지 지키며 진솔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오래 남을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제주도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무엇이든 출연하고 싶다”며 “‘무한도전’이나 ‘1박2일’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이 제주도의 사라져가는 문화를 집중 조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사우스카니발은 다음달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홍대 일원에서 열리는 잔다리 페스티벌과 18ㆍ19일에 제주도 전역에서 열리는 음악페스티벌 ‘제트 페스트(JET Fest)’에 출연한다.
출처:[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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