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임새가 무척 많아 삼국시대부터 아주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의 입맛을 맞추어온 채소답게 그 숫자가 위대하다.
하지만, 아무리 지천에 널린 채소라도 이유 없이 오래 사랑받지는 못한다. 무가 예로부터 꾸준히 밥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탁월한 맛과 효능이 있었을 터이다.
‘무를 먹으면 속병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속을 잘 다스린다는 말인데, 그 외에도 무의 뛰어난 점은 얼마든지 있다. 무는 무청부터 뿌리까지 버릴 부분이 없다. 영양소도 식이섬유와 비타민C, 칼슘, 칼륨 등이 풍부하며 특히, 소화를 촉진시키는 효소가 듬뿍 있어 곡식 위주의 한국인 밥상에 제격이다. <동의보감>에는 ‘체했을 때는 무를 날 것으로 씹어 삼키면 해독된다.’고 쓰여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육류를 먹고 쌀보다 밀가루가 친숙한 지금에도 무는 톡톡한 제 구실을 한다. 그 밖에도 암 예방, 고혈압 예방, 알코올 중독과 피로회복, 니코틴 제거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제주지역의 월동무는 당도 7.4°Bx로 단맛도 뛰어나다. 고려시대에는 중요한 채소로 부각되며 <본초강목>에는 ‘무가 모든 채소 중 몸에 가장 이롭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위(胃)대한 무’이지만, 시장이나 마트에서 만나고, 생선국에서 김치에서 만나는 무를 보고 반가워하는 이는 드물다. 흔해서 소중함을 놓치는 채소 중 하나이다.
이런 제주 월동무가 다시 과잉생산으로 가격 하락을 우려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올해산 월동무의 생산량은 31만4천t으로 전년 29만7천400t 보다 5.6% 많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산 월동무 가격이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칠까봐 농민들은 걱정이 앞서고, 일부업체에서 판매한 월동무에 이상증상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제주도는 금년산 월동무의 가격 회복을 위해 산지폐기 지원 사업비 25억 원을 확보해 전체 생산량의 15.9% 비상품 5만 톤을 폐기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되풀이 되는 과잉생산과 가격하락, 이것을 해결하는데 언제까지 산지폐기가 답이 될 수는 없다. 일단 당장은 농가 스스로 비상품 출하를 근절하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농가와 행정이 함께 내실있고 실제적인 재배구조와 유통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밥상의 겨울보약, 위대한 무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지위를 되찾기를 소망한다.
찬바람이 서늘하다. 연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를 부담스럽게 했다면 오늘은 위(胃)대한 무국으로 내 속과 재배농가의 속을 달래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