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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낭거리, 마을 사람들의 중요한 소통 공간이었습니다.
폭낭거리, 마을 사람들의 중요한 소통 공간이었습니다.
  • 영주일보
  • 승인 2014.09.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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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피를 나눈 혈연(血緣)의 인연은 아니지만, 언제나 같은 공간내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이를 이웃 사촌이라고 합니다. 굳이 지연(地緣)의 인연이라 하지 않더라도 마을의 대표를 선정하여 마을민의 무사안녕과 육축(六畜)의 번성, 풍농을 기원하였던 제의(祭儀)를 함께 지내기 위해 불턱을 기준으로 제비(祭費)를 거출하여, 함께 역할을 나무며 기원하고, 모자라는 노동력은 수눌음으로 보탰고, 오랜 삶의 경험에어 얻은 지식은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사이가 이웃이었습니다. 이들과는 부조(扶助)를 통해 결혼은 물론, 조상의 상례(喪禮)를 함께 치루면서 인간 도리를 실천하였으며, 혈연보다 돈독한 ‘괸당’의 인연을 맺어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였던 공간이 폭낭거리였습니다. 어느 마을이나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중간 내에 마련되기 마련이었습니다. 아름들이 거목이 커다랗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 아래 쉽게 걸터앉을 수 있도록 시멘트로 평상(平床)을 만들었 뿐 별다른 시설은 없었습니다. 오래된 마을에는 ‘듬돌’이라고 하여 마을 청년들이 힘자랑을 하였던 둥근 돌이 놓여있기도 하였습니다. 언제나 이 자리에는 농네 어른들이 모여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일들을 논의하고 걱정하는 곳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어느 집 아들의 결혼 이야기가 시작되면, 사돈집 내외(內外)의 경제력은 물론 살아온 행적, 인심까지 속속들이 교환하게 되고, 신부감의 사정도 사소하게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집에서 ‘이바지’는 무엇이 들어왔고, 중방은 누가 섰으며, 상객(上客)으로 가는 친가와 외가의 삼촌은 누구였고, 잔치음식으로 돼지는 몇 마리를 잡았는지까지 하나하나 이야기 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마을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었겠지요? 이것이 폭낭거리에서 소통이었습니다.

마을 마다 없는 마을이 없었지만, 애월 상가 서하동의 '폭낭거리'는 1000년 이상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 거노수(巨老樹)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상가 마을의 랜드마크이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마을이 설촌되기 이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터주대감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차씨, 주씨, 현씨 세 사람이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지금의 상가 마을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중엽에는 이 부근에 이 나무와 비슷한 연령의 팽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근을 '폭낭거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랜 풍상을 거치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은 거의 모두 쓰러졌으니, 이 나무만은 살아남은 것이었습니다. 이 팽나무도 2, 3백년 전부터 줄기 속이 비어버리는 동공화(洞空化)가 시작되었고, 1959년 사라호 태풍 때에는 지상 7m 정도에서 부러지면서 나머지만 남아 지금처럼 기울어져 누운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밑둥은 거대한데 위가 작아서 마치 일부러 분재(盆栽)용으로 가꾼 것처럼 보입니다. 100㎡의 면적에 높이 8m, 몸통 둘레 5.7m, 수관직경 12.7m에 달하는데 부러지고 쓰러졌기 때문에 높이가 낮은 편입니다. 현재 제주에서 최고 오랜된 나무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내의 많은 폭낭거리는 단지 나무 그늘이 주는 쉼터가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연결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사소함을 이야기하고 정분을 나누었던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굳이 마을회관이나 사랑방을 찾지 않더라도 이웃 어른들을 만날 수 있고, 이웃의 정(精)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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