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중산간 마을, 한남리에서 치루어졌던 백중제의 모습입니다. 다른 제사 때와 마찬가지로 백중제를 준비하는 집안에서는 적어도 3일전부터 제수(祭需)를 장만합니다. 메밥 1그릇과 밀감, 포도, 수박 등 게절에 맞는 과일을 준비하고 떡은 방앗간에 주문을 해 두었다가 사용합니다. 또 해어(海魚)를 사서 손질을 해 두었다가 장만하고, 희생으로 올릴 닭도 삶아서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렇게 준비한 제물을 구덕에 담아 목장으로 오르게 됩니다. 제의 장소는 목장 내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함께 목장을 사용하는 다른 분들도 해마다 이곳으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시가 될 때까지 한자리에 모인 분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식들의 근황, 농사형편, 마을일 등도 의논하게 됩니다.
자시(子時)가 가까워지면 함께 온 가족중 어린 사람이 나서 향불을 준비합니다. 보통은 모기를 쫓기 위해 피웠던 모깃불에서 몇 개의 숯덩이를 담아 사용합니다. 향불이 마련되면 준비해 청새를 바닥에 깔아 임시 제단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제수를 그 위에 진설하게 됩니다. 자시가 되면 우선 향로에 향을 넣어 향불을 피우고 메밥에 삽시한 후 제주(祭酒)를 올립니다. 단헌단작(單獻單作)으로 올리되 참례자(參禮者)와 제의자(祭儀者)들의 배(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상태로 잠시 두었다가 잔을 지웁니다. 철상을 하면서 진설하였던 제수를 조금씩 끊어 잡식을 하고 그것을 깨끗한 곳에 부어줍니다. 그리고 음복(飮福)을 하게 됩니다. 함께 한 참레자들 전부가 제단 옆 평지로 진설한 제물을 옮기고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준비한 제물을 남겨서 가져가는 것을 좋지 않다고 생각해 제수를 남기지 않도록 천천히 전부 먹고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족이 중심이 되어 노동력을 공급하는 소규모 영농 환경 속에서 육체의 고달픔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자갈이 많았던 밭을 일구는 파종에서부터 돗거름을 내어 옮기는 일까지 사람이 담당해야할 농경의 몫을 우마(牛馬)의 도움을 받으며 행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 우리 제주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 쬐는 뜨거운 밭에 쪼그려 앉아 쉼 없이 움직여야 했던 손놀림은 만병(萬病)을 불려오기에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백중에 즈음해 물맞이도 가고, 모리찜질도 하면서 몸에 온 백병을 다스리려 하였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을 도우며 농경에 지친 우마와 우마를 관리하는 테우리들을 위하는 백중제를 여름 사이에 둠으로써 뜨겁고 지친 여름을 쉬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만 그 후에 이어지는 수확, 운반, 탈곡, 도정, 수장에 이르기까지의 고된 노동 강도의 농경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선인들의 사려 깊은 지혜를 백중제를 통해 읽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