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매국에서 솟아난 영웅신 바람웃도가 홍토나라에 다니다가 천하의 미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모에 반한 바람웃도는 곧 그 집을 찾아가 허혼(許婚)을 받고 장가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부인은 자신이 반한 그 미인이 아니라 미인의 언니인 박색(薄色) 고산국이었습니다. 언니에게 잘못 장가든 것을 안 바람웃도는 처제(妻弟)를 연모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어느 날 바람웃도는 처제와 도망가기로 밀약하고, 둘이서 청구름을 타고 제주 한라산으로 도망칩니다. 남편을 찾던 고산국은 동생과 같이 도망간 것을 알고 한라산으로 뒤쫓아오게 됩니다. 자매는 한라산에서 갖가지 도술을 부리며 다투었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고산국은 동생에게 자매의 인연을 끊고 성(姓)을 ‘지’가로 고쳐 ‘지산국’으로 부르며,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했습니다. 동생과 갈라선 고산국은 서홍(西烘)으로 내려가, 학담을 경계로 하여 서홍 마을을 차지하고, 바람웃도과 지산국은 서귀·동홍 두 마을을 차지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신(神)들이 원수지간이 되면서부터 양쪽 마을 사람들도 서로 혼인(婚姻)하지 않고, 우마(牛馬)의 방목관리나 산의 나무 벌채(伐採) 같은 것도 엄격히 지경(地境)을 구분하여 서로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다고 헙니다.
이런 연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양쪽 마을 간에는 서로 혼인하거나 화합하여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신(神)의 내력담인 본풀이를 통해서 마을 사이의 불화(不和)를 처(妻)와 처제(妻弟)간의 다툼에서 연유된 것으로 설명하고, 이들 마을 신의 불화가 마을 사람들의 행위규범까지도 특정(特定) 지을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