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자리에서 유홍준은 검은오름이 제주의 오름을 대표한다기 보다 원시림과 곶자왈 등을 가진 360여개 제주 오름의 시작점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밝혔고, 반드시 가봐야 할 대표적 오름으로 ‘다랑쉬 오름’을 들었다. 그리고 제주의 많은 동굴을 설명하면서 지금도 김녕사굴을 지키고 가꾸고 있는 김군천님과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도 지적하였습니다. 또 당처물동굴을 설명하면서 용암동굴이면서 석회석의 석순(石筍)이 흘러내려있는 처녀동굴로서 가치 때문에 유네스코가 동굴유산으로 지정하는 기준이 되었음도 밝혔다. 베트남의 헤롱베이도 동굴유적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는 궤네기 동굴유적에서 황곰뼈가 발견되면서 과거 제주가 육지의 한부분이었다가 침강(沈降)과 융기(隆起)의 과정을 거치면서 섬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1만년전 삶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토기와 화살촉 등이 발굴되고 있는 고산리 유적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다른 지역의 토기와 비교하면서 한국의 신석기시대를 증거하는 중요한 유적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삼양동유적지는 원래 아파트공사를 위한 자리였으나 그 중요성을 이해한 시장의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통일 신라의 과정에서 한민족이지만 삼국의 국제정세는 원수지간의 관계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백제는 왜(倭)와 더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백제 패망후 왜로 건너간 백제인들은 백제식성을 쌓고 그곳까지 처들어올 적군과 항전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백제식 성이 아직도 많이 많아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당, 송, 원, 명, 청의 왕조가 생기고 없어졌던 그 시대를 단일 왕조로 지켜온 고려시대 475년간의 역사를 단 몇줄로 서술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서희 장군의 외교적 능력을 들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송나라는 거란족이 침범으로 상당히 힘들어 하였으므로 이를 들어 북방 5개성을 반환해 주면 거란족, 여진족의 침범을 막을 수 있다는 외교적 주장을 펼쳐 북방 5개성을 반환받는 성과를 올맀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한채 시(詩) 한구로 침략해온 외국의 장병들을 돌려보냈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항파두성을 설명하면서 김방경이 붉은오름에서의 최후의 일전과 삼별초의 제주항쟁을 설명하였습니다. 최씨 무신정권 말기 왕성(王城) 개경의 근위 수비대였던 삼별초의 신분과 개경에서의 항쟁, 진도 피신, 마지막으로 제주 항파두성에서의 항전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결과 고려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삼별초지만 끝까지 항쟁하였던 곳을 몽고가 직접 점령하였다는 구실을 들어 몽고의 직할령으로 삼고, 다루하치를 파견 직접지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군수물자(軍需物資)였던 군마(軍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몽고 7대 목장의 하나로 제주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목호(牧胡)를 파견, 군마 생산에 주력하면서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의 마생산의 중심지가 바로 제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00년후 몽골의 원(元)이 명하고 남아있던 목호들이 난(亂)이 심해져 결국 고려에서 최영장군을 파견 목호의 난을 수습하기에 이르게 되었으며 최후의 토벌지역인 ‘외돌개’에는 지금도 최영장군의 사당(祠堂)이 모셔지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또 그는 통일 대박을 이야기 하면서 대박은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박을 얻기 이전에 의료구호 물자의 제공 등의 중박, 소아 아동을 위한 소아병 치료제 제공 등의 소박의 과정을 거치면서 남북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 결과로 대박에 이를 수 있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모자라 이것으로 강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항파두성 이후의 역사 유적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좌 전후에는 팬싸인회를 무대에서 가짐으로써 당신의 책을 읽고 역사학도가 되기로 마음먹은 어린 학생에서부터 중년의 중후한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좀더 가까에서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유홍준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는 영남대학교 교수, 명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오늘 특강에서도 문화재청장 재임시 유네스코 자연부분 3관왕 지정 과정에서의 습득한 제주에 대한 이해가 제주사랑의 원천이었음을 밝혔던 것입니다. 그는 또 한국답사문화협의회 대표를 맡으면서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전제하에 우리 국민 모두에게 문화유산,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였으며, 역사 속 인물과 명작, 한국미술사에 대한 깊이 있는 30여편의 저작물을 통해 국민의 문화 안목을 한 단계 업시키기도 하였으며, 이를 통해 국민 문화역량에 강화에도 크게 기여하여 국민 교수가 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특강 내내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과 우리 살고 있는 터전으로서의 제주라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제주 사랑의 시작임을 말하는 특강이었습니다. 그가 5백여명의 도민에게 약속한 것처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는 후일 그가 우리 제주를 다시 찾아 항파두성 이후의 역사유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도민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