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도로이면서도 중간 중간에 좁아지거나 끊기는 인도, 울퉁불퉁한 노면, 시설한지 오래되어 미관상 좋지 않은 곳, 우리와 비교할 때 불편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그것을 교체하는 일은 없다. 불편한 건 질서와 배려로 풀어간다. 좁아진 인도에서 마주친 자전거는 서로 먼저 비켜 세워주려 하고, 인도가 없는 도로에서도 자동차는 보행자를 위해 천천히 운행하며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준다. 이들에게 좁은 도로는 문제가 아니라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카시마시에서 도로를 확장하거나 낡은 도로시설물을 교체하는 공사현장을 좀처럼 볼 수가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밤거리가 조금 어둡고, 낡고 오래된 시설물이 도시의 미관과 상충되더라도, 위험이 없다면 이들에게는 절약이 우선이다. 예산은 자기 돈이라는 생각이 강한 이들에게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는 불편함에 예산을 함부로 쓴다는 것은 공공의 적이라는 논리다. 생활 속에 이미 굳어버린 절약의 습관이며, 이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조금 불편하다고, 조금 보기 싫다고, 다른데도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떡반의 논리로 예산을 쓰고 있는데도 우리는 사업의 성과로만 치부하고, 완전한 낭비임에도 약간의 사치정도로 알게 모르게 같이 묻어가버리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신추룩’ 하지 않고, ‘이신대로’, 자신이 지키는 불편은 남을 위한 배려라는 시민정신으로 많이 불편할 것 같은 도심에서도, 이들은 자전거의 속도만큼이나 여유롭고 낭비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없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에게 너무 철저한 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 같아 무섭기까지 하다.
“희망이 없으면 절약도 없다. 우리가 절약하고 아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를 위해서다.” 처칠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