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측은 이날 실무 협상마저 무산되며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 수순을 밟게 될 경우,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단을 모두 잃고 손발이 묶이게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법하다.
개성공단이 박근혜 신정부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이른바 ‘조건부 관여 정책’의 마지막 보루이자, 북한 지도부의 기류 변화를 엿보는 조기경보기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시류에 따라 조변석개하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좌충우돌해온 북한을 길들이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회담 결렬을 빌미로 대화를 포기하고,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실험 등 강공책으로 선회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불어오는 북한발 안보 불안에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2002년 10월 불거진 북핵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은 정세 변화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강온책을 오가며 실리를 추구해왔고, 이번에도 이러한 전철을 다시 밟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얘기다.
우리 측은 이 경우 중국과 미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이들의 입김에 흔들리게 되고, 대규모 지원과 핵을 맞바꾸는 내용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또한 좌초 위기를 맞을 개연성이 컸다.
북한도 개성공단 협상이 끝내 결렬될 경우,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징검다리로 6자 회담을 재개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관계정상화,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낸다는 구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미국 측은 북한이 6자회담 등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챙기고, 한편으로는 핵탄두의 경량화 등 핵무기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따라서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협상을 6자 회담 재개의 시금석으로 삼고, 협상 타결을 간접적으로 압박해 온 것도 사실이다.
강성대국 건설을 기치로 내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입장에서도 공단 폐쇄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공단설립과 유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인데다,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5만3000여명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부담거리다.
결국, 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양측이 절박함 속에 한 걸음씩 양보하면서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극적으로 타결을 이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