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하고 그 재산을 국가에 귀속토록 한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다.
헌재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호 나목 등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는 일제강점 체제 유지·강화에 협력한 친일세력의 상징적 존재로 다른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헌재가 2011년 이미 친일재산 귀속조항에 대해 소급입법금지 원칙에 부합한다고 결정한 만큼 달리 판단할 여지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이들은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행위를 해 친일 행위 정도가 중하다고 볼 수 있다"며 "이 법 조항에서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이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를 제외토록 단서를 붙인 점과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조항인 점 등을 고려하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설시했다.
아울러 "법이 개정되면서 '한일합병의 공으로(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라는 부분이 삭제됐지만 이 역시 친일행위 성격이나 그 정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없다"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헌재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개정 전 법률에 근거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 개정 규정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보도록' 한 이 법 부칙 제2항에 대해선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재판부는 "부칙 조항의 위헌 여부는 해당 사건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아 이에 대한 위헌제청은 부적법하다"고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국가 귀속 결정의 위법성 정도와 이에 대한 심사가 필요한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로 제청 취지를 존중해 재판의 전제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부칙 조항은 결정의 하자를 소급적으로 치유하자는 것으로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이모씨의 조부는 1910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다는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록됐고, 재산조사위원회는 2009년 이를 근거로 이씨의 포천 일대 임야를 친일재산이라고 판단해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후 이씨는 국가를 상대로 토지를 돌려달라는 소를 제기했고 1심 법원은 개정 전 법률에 따라 "후작의 작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일합병의 공으로'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국가의 항소로 2심이 진행되던 2011년 법이 개정되면서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부분이 삭제됐고, 부칙은 '재산조사위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 개정규정에 따른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이에 이씨는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법원은 "친일 행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 범위에 포함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수 있고 부칙 조항은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한 조항으로 평등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위헌 제청을 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