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사초(史草) 파기 사태가 어떤 국면으로 흘러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대체로 두가지 가능성이 점쳐진다. 검찰수사 또는 특검을 통해 대화록 실종에 대한 진상규명에 나서는 것이다. 또하나는 여야가 대화록 증발로 더이상의 정쟁은 의미가 없다며 NLL(서해북방한계선) 논란의 영구종식을 선언하는 것이다.
◇사초파기 제2라운드…검찰수사? 특검?
새누리당이 대화록 증발사건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사초(史草) 파기 실종 사태가 국면전환을 맞게 됐다. 당초 여야는 대화록 실종의 책임론을 놓고 치열한 정치공방을 벌여왔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에,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대화록 실종 정국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새누리당이 대화록 실종 사태에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무현·이명박 정부 인사들을 검찰에 전원 고발하는 강수를 던졌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의미하는 것은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로 칼날이 향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판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당초 대화록 실종 논란을 마무리하기 위해 민주당에 검찰수사 의뢰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공동수호 선언 동참을 촉구했지만 민주당의 거부로 검찰 고발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이는 대화록 증발을 더이상 정치쟁점화 하지 않고 NLL 논란을 마무리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회의록 실종에 대한 책임규명은 검찰에 넘기고 장기적으로 정기국회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이 깔린 셈이다.
새누리당은 25일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전대미문의 사초(史草) 실종 사태와 관련된 관련자 일체를 고발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고발 대상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대화록 실종과 관련된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인물을 모두 포함토록 했다. 사실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문재인 의원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출구전략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의 거센 반발 탓이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고발카드를 꺼내 든 것과 관련, "새누리당이 검찰에 고발할 인사들은 뻔하다. 최종적으로 민주당 전 대선후보인 문 의원을 욕보이기 위해 정치검찰을 동원하고 싶은 것 같다. 늘 그랬듯이 적반하장이 새누리당의 본색"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진상이 파악되지 않았는데도 범죄행위로 몰고 가는 것은 이명박 정권때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거꾸로 자인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당장 검찰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수사보다는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회의록 실종의 진상파악을 위해서는 여야가 합의해서 엄정한 수사가 있으면 된다"며 "(여당의 단독고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대화록 실종사건의 경우 특검을 통해 불법유출과 대선공작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특검요구에 대해선 분명한 선을 그었다. 특히 새누리당이 검찰고발을 신속하게 진행한 점은 민주당의 특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특검을 수용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진다는게 이유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특검은 검찰 수사가 미진할 때 들어갈 수 있다"며 "우선 검찰에서 정상회담 대화록의 생산과 관리, 이관에 참여한 관계자,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관리·보전한 분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일축했다.
◇여야, NLL 정쟁 중단 희망… 영구종식 가능할까?
또하나의 시나리오는 여야가 대화록 실종 논란과 관련해 정쟁의 영구종식을 선언하고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일단 분위기는 만들어졌다. 여야 지도부는 더이상의 정쟁은 무의미 하다는 뜻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26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제부터 새누리당은 NLL 관련한 일체 정쟁을 중단하겠다. 검찰수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도 이날 경기 평택 2함대 인천함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NLL을 사수하고 수호하겠다는 그런 의지를 표명하자는 제안을 넘어 NLL 논란 영구 종식을 선언하자"고 주장했다.
양당 지도부의 이같은 발언은 NLL 정국으로 인한 피로감과 소모적인 논란으로 정치권이 민생보다는 정쟁에만 관심이 있다는 국민적 비판여론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의 본연의 임무보다는 당의 이득을 위해 사생결단식 싸움은 더이상 해서는 안된다는 불안감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당 지도부의 생각처럼 정쟁의 영구종식은 힘들다는 분위기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간극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고 정쟁을 종식하는 대신 진실규명을 여전히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 탓이다.
새누리당은 정쟁을 종식시키는 대신 검찰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NLL 포기 논란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특검과 사전준비문서, 사후이행문서 등 부속문서를 열람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도부의 생각과 다르게 당내의 미묘한 분위기도 정쟁의 영구종식을 발목잡고 있다. 아직까지 NLL대화록 실종논란을 덮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당연히 민생"이라면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남북정상 회담에서 발목이 잡힐 것이 불 보듯 하다. NLL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친노(친노무현)그룹에서 강경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일체의 논란을 덮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하다.
문재인 의원은 "대화록이 없다고 하는 이유를 내세워 NLL 포기 논란의 진실을 덮어서는 결코 안된다"며 "문제의 본질인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