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몰아친 인사참사로 박근혜정부의 본격적인 국정운영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바쁜 일정 가운데 성공리에 마친 첫 미국 순방은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퇴색됐다.
또 취임 초부터 핵실험 및 도발 위협 등으로 정부를 곤혹스럽게 해온 북한문제는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고 양극화 해소 및 경제위기 극복, 국정 및 정치 쇄신 작업 등도 현 정부에게 남아있는 중요한 과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차근차근 당면한 현안들을 챙기고 국정운영에 박차를 가하면서 민생 회복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어려운 국면들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차분하게 대응해나가고 있다는 평가 탓인지 국정 지지율 등에서는 어느 정도 '선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 100일간 박 대통령이 보여준 국정에 대해 공과가 엇갈리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그동안 터져나온 악재들을 조기에 극복하고 국민행복시대를 본격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인사시스템 개선이나 소통 노력을 더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양극화 문제 등 민생현안, 경제회복과 한반도 긴장완화 등 대내외적으로 산적한 현안들을 지혜롭고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사참사' 속 한미동맹 강화·대북 위협 차분한 대응 등은 성과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곧바로 맞닥뜨린 시험대는 인사문제였다. 박 대통령이 내정한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미래창조과학부·국방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등 줄줄이 이어진 낙마는 인사파동을 넘어 '인사참사'로 불릴 정도로 정권 초부터 큰 파장을 불러왔다.
더욱이 계속되는 인사 논란과 함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 문제는 새 정부 국정의 늑장 출발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취임 뒤 불과 일주일 만에 직접 대국민담화에 나서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박근혜정부 출범 52일만인 4월 17일에야 조직개편안에 따른 초대 내각 구성이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과 소통하는 모습 대신 지나치게 자신의 원칙만 고수하면서 경직된 태도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불거졌다.
특히 지난달 첫 미국 순방 도중 터져나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은 방미 성과뿐 아니라 박근혜정부 초반의 이슈를 덮어버리는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가져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시점에 현지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즉각 경질로 이어진 이번 사태는 이후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귀국종용 및 보고지연 논란과 사표 수리 등으로 번지면서 박 대통령이 입은 타격도 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이어진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용,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가 야기됐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빚은 또 하나의 참사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윤 전 대변인 사태는 취임 100일을 맞은 현 시점에서도 계속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아직 그 최종 여파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박 대통령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국정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취임 초부터 계속돼온 북한의 도발 위협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면서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위기를 진정시켰다는 점은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이어지면서 여전히 대북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점 등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지만 이 같은 대응을 통해 일단 국내·외의 안보 우려를 낮췄다는 평가다.
또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긴밀한 동맹국인 미국으로 처음 나선 외교행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무난히 마치고 향후 협력관계를 돈독히 했다는 점도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이번 방미를 통해 한·미 동맹과 대북공조 의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대북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인 서울프로세스 등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미국 방문길에서 보잉·GM 등의 기업들로부터 투자 의사를 확인한 점 등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했다는 점은 경제분야의 성과로도 꼽혔다.
'마중물'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경기부양을 위해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 역시 성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본격화해나가면서 보여주고 있는 업무 스타일도 주목받고 있다.
국정 돌입 시점이 늦어지긴 했지만 자신이 공약에서 내건 약속들이나 국정현안 등을 긴 시간에 걸쳐 상세히 주문하면서 리드해나가는 '꼼꼼 지시'를 통해 공무원사회를 바짝 긴장시키는 등 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포스트 100일', 대북문제 및 경제회복, 소통 등 과제 만만찮아
이처럼 쉽지 않았던 100일은 박 대통령에게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도 보여주고 있다.
일단 박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평화통일 기반 구축 등 4대 국정기조를 실현해나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국정운영의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100일간 창조경제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점 등을 돌이켜볼 때 앞으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양극화 심화와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어오면서 추락한 민생경제를 회복하는 것 역시 필수과제다. 국민을 향해 약속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면서도 최근 엔저현상과 저성장기조 등으로 인한 위기감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창조적' 경제정책 운영을 통해 리더십과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대북문제도 중요한 과제다. 안보우려를 다소 해소했다는 점은 성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남북 교류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에 이르는 등 남북관계가 경직됐다는 점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이 내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단순히 원칙만을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상이 아닌, 결과적으로 대화국면을 조성해 남북 간에 화해의 길을 여는 설계도라는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통문제다. 지난 100일간 벌어진 인사참사에서 보듯 대통령 1인의 머릿속에서만 이뤄지는 국정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한 단계 진화하는 통치 스타일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이명박정권 내내 불거졌던 소통부재로 인한 국정난맥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에 변화를 주거나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국정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정치평론가 박상병 박사는 "박 대통령에게 제기됐던 불통(不通)문제는 아직 진행 중이다. 여전히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높고 먼 곳에 있는 상황"이라며 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친정체제를 구축하면 안 된다. 대통령은 각 부처에 힘을 실어주고 각 부처 장관들이 앞장서는 국정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며 책임장관제 등의 실현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박 대통령은 (청와대나 정부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여주고 큰 틀에서 그림을 그리는 국정운영 방식으로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는 "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이 중심을 잡기 위해 안정감을 줬다는 측면은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대북정책에 있어 박 대통령이 얘기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서울프로세스를 얘기하기엔 너무 남북관계가 경색돼버렸다"고 우려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00일의 성과에 대해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보다 민생문제와 직결되는 생활정책들을 추진하는 국정운영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갑작스런 북한의 강경태도에도 당황하지 않고 정부 나름대로의 강온전략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대통합에 대한 실천적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긍정적 시그널을 주지 못해 사회적 긴장관계가 지속됐다"며 "장·차관 등 고위직공무원의 폐쇄적 인사시스템으로 인한 인사난맥상이 계속 드러나고 있어 인사개혁 의지를 의심케 할 만큼 정권 차원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으로부터 일방적인 단순전달형으로 이뤄지는 국정관리 추진시스템을 당·정·청 또는 정부부처 간에 서로 협력해 통합될 수 있는 내적구조로 보완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분업과 협업이 역동적으로 이뤄지는 국정관리 구조를 유도해 '눈치행정'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