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에선 성추행 '경범죄' 분류…범죄인인도 대상 아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한·미 간의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법리적용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미국 워싱턴 DC 경찰과 현지 소식통 등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워싱턴 D.C.에서 주미대사관 인턴인 A씨와의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9일(한국시각) 오후 한국에 급거 귀국했다.
◇한국 수사당국 인지수사, 美범죄인인도 요청 쉽지 않을 듯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된 신고가 미국 현지 경찰에 공식 접수됨에 따라 향후 우리 정부 내에서도 수사기관 주체와 범위, 수사대상 등에 대한 법률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단 한국과 미국은 형사·사법 공조 체계가 구축돼 있어 양국간 수사와 관련된 긴밀한 협조는 상시적으로 가능하다.
또 양국은 모두 형법상 '속지주의(자국 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자국 형법을 적용)', '속인주의(자국 영역을 불문하고 자국민에게 자국 법을 적용)' 원칙으로 한다.
미국 현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도 속지주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수사당국이 한국 측에 '한미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른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이 기존에 알려진 성추행 외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거나 성추행 죄질의 경중에 따라 범죄인인도 요청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미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르면 양국은 자국 영토에서 1년 이상의 징역, 금고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르고 상대방 국가로 도주한 자국민에 대해 인도를 청구할 수 있고, 상대방 국가는 여기에 응할 의무가 있다.
미국 정부에서 한국 외교통상부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면 외교통상부 장관은 인도청구서에 관계자료를 첨부해 법무부 장관에게 송부하고, 법무부 장관은 인도청구서 등을 검토한 후 서울고검장에게 인도심사청구를 명령한다. 서울고검장은 인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범죄인을 구속한 후 서울고법에 인도심사를 청구해 재판을 거쳐 인도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다만 변수가 없는건 아니다. 미국은 각 주(州)마다 법 조항이 다르기 때문에 성추행 범죄에 대한 현지에서의 처벌기준이나 수위, 형량 등에 따라 범죄인인도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윤 전 대변인의 경우 성추행 범죄만으로는 범죄인인도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미국 워싱턴DC법상 경범죄는 1000달러 이하 벌금이나 6개월 구류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이 성폭행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비교적 경범죄로 분류되는 성추행 범죄사실만 인정된다면 범죄인인도 청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범죄인 인도는 살인, 강간 등과 같은 중대한 범죄 위주로 이뤄지고, 애초부터 양국 정부가 방미 성과가 퇴색될 것을 우려해 외교적 관점에서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부에서는 윤 전 대변인의 국적, 신병확보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사의 효율성을 놓고 볼 때 한국의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성범죄가 친고죄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직접적인 고소 없이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고 수사기관이 관련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
미 수사당국의 위탁 조사나 미국 경찰의 한국 현지 조사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미국 경찰이 한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국내에서 수사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이 국내에서 자신의 신변을 정리한 뒤 미국으로 자진 입국에 조사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한미 양국간 외교문제 비화에 따른 걱정을 덜 수 있고 청와대 입장에서도 현직 대변인 신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결 부담을 덜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협의나 협조요청이 들어온 건 없다"며 "사법처리가 이뤄지면 법무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내부에서 사건과 관련된 법리검토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성범죄 처벌? 美, 한국보다 대체로 엄격
미국 워싱턴 DC 경찰은 지난 8일 낮(현지 시각) 피해 여성으로부터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에 공식 착수했다. 구체적인 수사상황은 가급적 언급을 꺼리고 있다.
다만 윤 전 대변인의 혐의와 관련, 미 현지 경찰은 'Misdemeanor(비행/경범죄)'로 입건됐다는 점을 공개했다. 미국 내에서 'Misdemeanor'는 통상 가슴이나 엉덩이에 손을 대는 등의 성추행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현지 경찰이 작성한 2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성추행(SEX ABUSE)'이 사건 제목으로 표기돼 있고, 혐의는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GABBED HER BUTTOCKS WITH OUT HER PERMISSION)'고 명시됐다.
양국 정부간 물밑 협의에 따라 향후 수사와 관련된 절차상 문제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미 양국간 성범죄에 대한 법리적인 시각 차이가 적지 않다.
우선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한 강제추행죄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 친고죄로 분류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를 통해 사법처리가 가능하다.
만약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고소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책임은 질 수 있지만 형사처벌에 따른 부담은 덜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6월19일부터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기 때문에 피해여성이 한국 수사기관에 추가로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는 이상 한국 내에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에서 성범죄는 수사관이 인지할 경우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수사대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도 한미 양국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성범죄의 피해자가 고소하더라도 가해자와 합의를 통해 고소를 취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합의 여부를 성범죄자의 양형기준에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성추행에 대해서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우리나라에 비해 성범죄를 중대한 범죄로 다루기 때문에 선고에 불복하더라도 항소 기각률은 90% 이상일 만큼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범죄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예단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결국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한국 수사당국이 나서기 주도하기 보다는 미국 정부나 현지 경찰의 수사의지, 피해여성의 의사에 따라 처벌수위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