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1회초에만 9점을 내준 SK는 5회초까지 1-11로 뒤졌다. 모두가 뒤집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SK에는 그저 깔끔하게 지는 일만 남은 듯 했다.
하지만 SK는 교체 선수들의 활약 속에 힘을 내기 시작하더니 8회 11-12까지 따라 붙었다. 9회 마지막 공격에서는 선두타자 한동민의 솔로포로 동점을 만든 뒤 박재상의 볼넷으로 역전 기회까지 잡았다.
SK의 작전이 먹힌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후 정상호의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번트 모션을 취하다가 강공으로 전환하는 것)가 좌전 안타로 연결되면서 무사 1,2루를 만든 SK는 최윤석 타석 때 1,2루 주자의 허를 찌르는 더블 스틸로 13-12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9일 두산전을 앞두고 만난 SK 이만수 감독은 9회 두 차례 작전에 대한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차례는 벤치의 사인이었고 한 차례는 작전 실패가 운 좋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 감독은 "정상호의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는 사인이 나갔다. 하지만 더블 스틸은 사인이 나간 것이 아니었다. 똑같이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를 지시했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사 1,2루에서 등장한 최윤석은 번트 자세를 취하다가 초구에 방망이를 헛돌렸고 이 사이 주자 2명이 한 베이스씩 진루했다. SK쪽에 조금은 운이 따른 장면이었다.
이 감독은 "최윤석 타석이라 야수들이 100% 대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인을 냈다"며 "오늘 최윤석을 불러 칭찬해주려고 헛스윙에 대해 물어봤는데 일부러가 아니라 공을 못 맞췄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어쨌든 승리로 이어졌으니 SK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추억이 된 셈이다. 이 감독은 "그 대목은 나에게도 공부가 많이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이 감독은 전날 승리가 팀 분위기 상승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했다. 특히 주전과 비주전급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낸 1승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 지르고 파이팅을 하는 모습을 이날 처음 봤다. 가장 먼저 빠진 조인성(3회 종료 후 교체)부터 시작해 정근우와 최정, 김상현까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모습에 놀랐다"면서 "똑같은 말이라도 감독이 하면 부담스럽다. 가장 좋은 장면은 선수가 선수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선수들 덕분에 새 역사를 썼다"고 공을 돌렸다.【문학=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