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는 3일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원주 치악산의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과 함께 마련한 ‘아시아 불교 판화의 세계’전에서 일왕(천황)의 장수와 건승을 기원하는 문구가 담긴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문제의 작품은 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터에도 게재돼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림과 글씨가 함께 어우러진 이 작품은 상단에 제목인 ‘수신묘장구대다라니’가 써 있고 오른쪽 상단에 ‘천황기수영창(天皇祈壽永昌)’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천황기수영창(天皇祈壽永昌)’은 천황의 장수와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는 뜻이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 작품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천수경(千手經)의 으뜸가는 주문인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을 그림과 함께 새겼다.
주문의 도입부에 일본 왕의 장수와 건승을 기원하는 문구를 넣은 것으로 미뤄 당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제국주의 일본의 요시히토(嘉仁 1879∼1926) 일왕을 위해 특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요시히토는 아시아 침략을 위한 제국주의 일본의 선봉에 나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후 총독을 내세워 토지조사사업으로 경제적인 수탈을 자행했고, 3·1운동을 무력으로 억누른 장본인이다. 요시히토의 아들이 히로히토(裕仁 1901∼1989), 손자가 현재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다.
그런만큼 일본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구가 담긴 것을 굳이 포스터까지 만들어 홍보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뉴욕에서 온 불자 김순자씨는 “5월 연등 축제를 보기 위해 모처럼 고국을 찾았는데 고판화전이 열리고 있어 흥미롭게 보다가 일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문구를 보고 너무 놀랐다. 여기가 일본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어이없어 했다.
특히 이곳은 관광명소인 인사동과 골목 하나로 연결되고 마침 일본의 황금연휴를 맞아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고판화전을 감상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전시장을 찾은 조계종단의 한 스님도 “일본 불교의 입장에서야 자기네 군주의 만수무강을 기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일본 왕은 군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더구나 요즘 일본 총리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노골적인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고 있는데 이런 작품을 보니 참으로 낯이 뜨겁다”고 탄식을 했다.
고판화박물관의 한선학 관장은 “이 작품은 본래 직지사에 소장 중인 것으로 그림과 함께 천수화 형태로 나온 것은 보기 드문 것이어서 미술학적 가치가 있어 전시하게 됐다. 일본 왕을 내세우려는 의도는 없으니 이해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런 설명이 없이 작품이 전시되고 포스터까지 만든 것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에 대해 “그 점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안내문을 붙여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판화전엔 국내 유일의 고판화박물관인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이 소장 중인 작품 50여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네팔, 미얀마, 태국 등 9개국의 목판 원판과 불경, 불화 판화 등을 볼 수 있다.
고려 법화경 변상도를 비롯, 중국 저장(浙江)성 박물관이 자랑하는 남송시대 ‘불정심다라니경’을 조선 초기에 번각한 판본, 명나라 때의 ‘불정심다라니경’ 원본과 이를 토대로 인수대비가 아들 성종을 위해 만든 ‘불정심다라니경 번각본’ 등 희귀한 불교 판화 등을 선보이는 최초의 서울전시회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조계사 건너편 템플스테이 홍보관 1층에서 전시 중인 고판화전은 5월5일까지 계속된다. 【서울=뉴시스】